▲숲과 공원, 도서관은 모두 길이 연결되어 있어, 어디에서 출발하든 원하는 장소에 닿을 수 있다.
신은경
교하신도시는 파주시에서 가장 먼저 조성된 신도시다. 가장 먼저 조성된 신도시답게 파주 신도시 중 연식이 제일 오래됐다. 2005년과 2006년 사이에 지어진 아파트들과 전원주택, 타운하우스, 빌라들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도시보단 '동네'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작은 마을이다.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지어진 지 이제 겨우 16년 되었지만, 대한민국에선 15년만 넘으면 모두 구축아파트로 분류된다. 신축아파트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한데, 구축아파트라는 말은 작년에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고 알았다. 그때 본 뉴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GTX까지 뚫리는데 5억이 안 된다고? 이런 아파트, 이곳에 있습니다" 이 기사의 주요 내용은 주변 신축아파트들보다, 새로 생기는 전철역과 거리상 더 가깝지만, 구축아파트가 많기에 다른 지역보다 부동산 시세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었다.
기사에서 의문형 문장까지 사용하며 놀랍게 싸다고 소개한 '이곳'이 내가 사는 우리 동네다. 5억이 싼 축에 속한다는 현실에 경악하고, 신축이 들어서니 금방 구축으로 분류되는 게 씁쓸했다.
'구축'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우리 동네를 보니 좀 튀긴 한다. 대체로 조용한 마을인 이곳이 이렇게 튀게 된 이유는 파주의 신도시 확장 때문이다. 교하지구 주변으로 유명 건설사 신축 브랜드 아파트들이 지어졌고, 지금도 열심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원래 파주에는 군부대가 많아 고층건물을 짓지 못했다. 그래서 교하신도시에 있는 아파트들은 모두 15층 이하로 지어졌다. 그러나 높이에 대한 규제가 몇 년 전 없어진 뒤로는 주로 25층~29층의 고층아파트들이 세워지고 있다.
높은 아파트들이 대규모 단지를 이루어 지어진 모습은 마치 거대한 장벽을 연상케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멀리까지 보이던 풍경들을 이제 더는 볼 수 없다니, 뭔가 소중한 걸 잃은 기분이다.
그런데 풍경은 그렇다 치고, 아파트 매매가로 동네를 나누고 싸구려 취급하는 건 그저 소중한 걸 잃은 기분이 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잘못 없이 모욕을 당한 기분이다. 집과 동네를 사람이 '사는(living) 곳'으로 보지 않고, 오직 '사는(buying) 상품'으로 보는 태도들이 한심하면서도, 나 역시 몇 년 뒤에는 신축아파트로 이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오래지 않아 사라진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복잡하던 생각들이 금방 단순하게 정리된다.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보이는 것들
숲속길마을, 책향기로(도로명 주소). 우리 동네 이름이다. 이름답게 각각의 아파트단지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고, 마을의 중심에 도서관이 있다. 숲의 오른편엔 여러 나라의 정원을 재현한 공원이 있는데, 조성된 지 15년 이상 된 공원답게 제법 운치가 있다.
숲과 공원, 도서관은 모두 길이 연결되어 있어, 어디에서 출발하든 원하는 장소에 닿을 수 있다. 직장을 다닐 땐, 동네에 살고 있지만, 막상 동네에 대해 구석구석 알진 못했다. 인사하며 지내는 이웃도 거의 없었다. 아침 일찍 서울로 떠났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오고, 주말엔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느라 느긋하게 동네를 알아가며, 즐기지 못했다.
직장을 그만둔 뒤부턴 매일같이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대낮에 별일 없이 동네를 걷는 일이 생각보다 좋다. 적성에 맞는다. 특히, 벚꽃이 피고 지던 봄엔 그저 걷기만 했는데도 행복지수가 마구 상승하는 호강을 누렸다. 더운 여름엔 밤 산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