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부지부장과 조합원이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6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을 만나 대우조선해양의 고용보장 합의가 이행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성호
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며 51일간 파업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사측과 합의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다시 거리에 나앉았다. 사측이 파업 참가 조합원 42명에 대한 고용 승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8월 23일,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조를 상대로 50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강행하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하청 노조는 "사측이 고용 승계를 미루는 것은 노조 파괴 행위"라며 단식 농성을 진행 중이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은 실직 상태인 42명의 고용 보장을 촉구하며 지난 18일부터 단식에 돌입했다. 김 지회장은 "하청 노동자는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42명 중 가장인 사람들도 많다. 실직이 길어지면 가족 생계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들 42명은 하청 업체 '진형'에서 일하던 도장공 31명, 또 다른 하청 업체 '혜성'에서 일하던 발판공 11명이다. 이들 대부분 조선소 경력 10년차 이상의 숙련공이지만, 처우는 최저임금 수준에 그쳐왔다. 이들의 평균 연령대는 40~50대다. 김 지회장은 "얼마 전 정부가 조선업 인력난이 심각하다며 외국인 노동자 비자 제한까지 풀겠다고 발표했다"라며 "지금 상황에서 노조했다는 이유로 숙련공들이 해고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되물었다.
김 지회장은 대우조선 측의 500억 손배소 청구 움직임과 관련해서도 "회사는 끝내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저번 파업은 노동자들이 정당하게 쟁의권을 확보해 진행했을 뿐 아니라, 온 국민이 지켜봤다"라며 "하청 노동자들에게 500억 원이란 돈이 어디 있나. 기본적인 노동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농성 중인 김 지회장은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 신청을 막는 노란봉투법 제정도 촉구했다.
앞서 유례 없는 가로·세로·높이 1미터 감옥 투쟁, 도크 점거 고공 농성, 단식 농성 등으로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리며 사회적 관심을 받은 대우조선 하청 노조 파업은 지난 7월 22일 노사 합의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 하청 노동자들이 마주한 건 고용 불안과 거액의 손배소다. 23일 국회 앞 천막에서 단식 6일 차를 맞은 김형수 지회장을 만났다. 잠을 제대로 못 이룬다는 그의 목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고용 승계 걱정 말라더니... 노조 탈퇴하면 고용 승계 해준다고?"
▲ 대우조선해양 합의 이후 다시 단식 농성 돌입한 김형수 지회장 ⓒ 유성호
- 지난 18일부터 단식 농성 중이다. 이유는.
"지난 7월 22일 파업을 풀고 난 뒤 사측이 합의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서다. 당시 사측은 폐업한 진형, 혜성, 수호마린, 삼주 4개 업체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고용 승계를 약속했었다. 합의문에는 '고용(승계)을 최대한 노력한다'고만 돼 있었지만, 사측은 구두로 '현재 조선소 인력이 부족하고 고용 승계가 필요한 인원이 40여 명으로 많지도 않다'면서 '고용 승계는 걱정 말라'고 했다. 원청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한 달이 지나도록 진형과 혜성 소속 42명 조합원들은 고용이 안 되고 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말이 바뀐 거다. 하청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비조합원들은 다 고용 승계가 됐는데 우리 조합원들만 배제됐다. 심지어 일부 조합원들은 '노조 탈퇴하면 고용을 승계해주겠다'는 말까지 들었다. 사측이 대놓고 노조 파괴 행위를 하고 있다. '노조 하면 고용 안 된다'는 인식을 심고 있다."
- 단식 돌입 후 사측 변화는.
"없다. 합의 파기로 몰릴까봐 회사는 '고용 안 해준다'고는 하지 않고 있지만 계속 시간만 끌고 있다. 그 사이 노동자들만 죽어난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실직되면 어떻게 되겠나. 평소에 돈이라도 저축해둔 사람들이면 모르겠는데 10년, 20년 일해도 최저임금 받았던 사람들이 모아둔 돈이 어디 있나."
- 나머지 '수호마린'과 '삼주' 2개 업체 소속 조합원들은 고용 승계가 이뤄진 건가.
"그렇다. 두 업체 모두 조합원이 한두 명 수준으로 적어서다. 반면 조합원이 각각 31명, 11명으로 많은 '진형'과 '혜성' 소속 노동자들은 아직까지 고용 승계가 안 됐다. 사측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것으로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 심지어 '진형'에서 일했다고 하면 다른 업체에서 채용이 안 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블랙리스트다. 암묵적인 담합이다. 전체 사원이 110여 명이던 진형에 한때 우리 조합원이 70여 명까지 됐었으니까. 노조 가입 여부를 떠나 그냥 '진형'에서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 현재 대우조선 하청 업체 중 노조 조합원이 있는 곳은 얼마나 되나.
"대우조선에는 원청 노동자가 총 1만여 명, 하청 노동자가 총 1만1000여 명이다. 2017년 출범한 하청 노조 조합원은 현재 600명 정도다. 조선소 하청 노조 치고 빨리 늘어난 거라고 하던데, 현실을 바꾸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대우조선의 총 100여 개 하청 업체 중 조합원이 있는 곳은 30여개다. 이중에서도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합원임을 공개한 업체가 22곳이다. 이 22개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저번 파업 이후 단체 교섭을 맺었다."
"조선소 인력난이라면서... 정부, 조합원 고용 승계 문제는 방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