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서른 중반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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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고 이한빛 PD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TvN 드라마 '혼술 남녀'의 신입 조연출로 일했던 그는 계약직 직원들을 해고하는 업무를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스스로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 그는 유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나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당장 사표를 던지고 싶었지만 먹고사는 일을 외면할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모아놓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용기가 부족했다. 지금 회사를 그만 두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불안했다.
그때 갑작스럽게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암이었다.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아 궁금했는데 급히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친구의 마지막 생일을 눈물과 웃음으로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깨달았다. 삶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을지도 모른다고.
그 무렵 나는 <로봇의 부상>, <특이점이 온다>와 같이 '노동의 종말'을 예고하는 책들에 빠져있었고, 그때만 해도 생소했던 기본소득을 받으며 살게 될 거란 희망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이유들이 하나둘씩 쌓이니 용기가 났다. 마침내 사표를 던질 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치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담담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근데 선생님은 앞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
그림책 공부 모임이 끝나고 지난 번과는 다른 참여자가 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한 번만 더 선생님이라고 하면 강의료를 받겠다고 했다. 이제 그런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부모의 불안감을 끊임없이 자극해, 주머니를 털어 먹고사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책이든 교육이든 강의든 뭐든.
아이 선물을 항상 그림책으로 달라는 친구가 있다. 생일에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면 그림책 좀 골라서 보내달라고 한다.
"책 고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차라리 그냥 신발이나 옷이나 그런 거 사달라고 해."
"네가 그런데 나는 오죽하겠어."
앓는 소리를 하는 친구에게 요즘 아이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물어보고 며칠 씩 고민해서 책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항상 같은 반응이다.
"내가 도서관에 가면 진짜 이상한 책만 고르게 되던데, 넌 어떻게 이렇게 좋은 책만 골라?"
하루에도 너무 많은 어린이책이 쏟아져 나온다. 예전보다 더 많은 책을 만들면 좋은 책들도 더 많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시스템에 의해 촉박하게 찍어내는 책들은 깊이를 담보할 수 없다. '책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만든다'던 선배들의 말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