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학암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
최서우
무섬마을 고택들의 모습
마을 전경을 보고 다시 수도교로 돌아갔다. 수도교를 지나 무섬마을 안내판 바로 옆에 고택이 하나 있는데, 고택 이름은 해우당(海愚堂)이다. 선성 김씨 입향조 김대의 셋째 손자 김영각이 1830년에 건립하고, 그의 양자이자 의금부 도사였던 김낙풍이 고종 16년(1879)에 중수한 살림집이다. 사랑채에 걸린 해우당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다. 김낙풍은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내서 명사들과 교류가 활발했는데, 그중 한 명이 흥선대원군이었다. 실제로 흥선대원군은 영주에 방문할 때 이곳에 묵곤 했다.
해우당은 김낙풍의 증손자이자 항일운동가였던 김화진의 생가이기도 하다. 김화진을 비롯하여 무섬마을에서 배출한 독립운동 포상자는 무려 5명이나 된다. 무섬마을의 항일운동은 의병 또는 3.1 운동에 참여했던 지역과는 좀 다른 양상을 띠는데, 1920년 후반 1930년 전반의 사회주의 농민운동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곳이 해우당 고택 북서에 있는 아도서숙이다. 1928년 김화진과 선성 김씨 가문이 중심이 되어 문맹퇴치, 민족교육, 민족정신 고양을 중점 삼아 농민계몽활동을 이어갔는데 당대 사회주의 운동답게 신분계급과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배울 수 있었다. 아도서숙 운영위원들이 적색농민조합을 결성하다가 일제에게 구속되면서 1933년 폐쇄되고 82년이 지나서야 겨우 고증을 거쳐 아도서숙을 재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