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문화주택(1930)1920년대 후반 경성에 유행처럼 퍼진 서구식 주택. 일제는 한옥을 비위생적이고 저열한 주거공간으로 비하하려는 의도로 이 문화주택을 활용함.
서울역사박물관
일제는 이와 함께 부동산 신탁회사를 통해 막대한 투기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투기자본이 조선인 거주지인 북촌이라고 가만둘 이유가 없었다. 세도가와 왕족, 친일파 및 옛 고관대작들이 차지한 너른 주택지가 이들 신탁자본의 표적이 된 것이다.
3.1운동 이후 설립되어 '주택청부업을 하는 건양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부동산 매입과 설계, 시공 및 분양, 금융알선 일체를 수행했다. 이 회사 대표가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에도 깊이 관여한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정세권'이다. 건양사는 1940년 이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는 앞 두 조직을 지원한 재정적 영향은 물론, 이로 인한 일제 탄압이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정세권은 일제의 부동산 신탁으로부터 어떻게든 북촌을 지켜내고 싶었다. 한옥의 특성을 지켜내면서, 문화주택처럼 부엌과 화장실 등 위생시설 개선을 추구한다. 아울러 돈 없는 서민들도 집을 쉬이 구할 수 있도록 소규모 한옥 보급을 동시 추구한다.
10~50평형에 이르는 규모별 기본 모듈을 구성한다. 부지 면적에 맞춰 'ㄱ자와 ㄷ자, 트인 ㅁ자'가 주를 이룬다. 모듈에 맞춰 표준화된 석재와 목재의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고, 구획된 장방형 획지에 이를 지형에 따라 응용하여 시공한다. 이렇게 탄생한 집이 소위 '도시형 한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