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천에서2분 간격으로 걷기와 뛰기를 50분 동안 반복한다.
안사을
현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욕이나 체력이 앞서지만, 조깅 초반에는 정말 심신을 쥐어 짜내면서까지 겨우 과정을 따라오는 학생이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인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죽을 것같은 표정을 못 보기도 했다.
천변길이지만 자동차가 간혹 오고가는 길로 조깅을 할 때였다. 아이들의 속도와 호흡을 조절하기 위해 나는 맨 앞에서 거꾸로 뛰고 있었다. 그때 내 뒤편에서 차 한 대가 다가왔고 도로를 구르는 바퀴 소리가 들렸기에 넉넉하게 아이들을 길 가로 인도했다. 그때 그 녀석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순간 선생님이 저 차에 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 당시 나와 그 학생은 그다지 친하지 않았고 깊은 대화도 많이 나누지 못했던 상태였다. 마음 속으로는 대단히 당황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로 그 어색함을 달래야 할지 모르기도 했다.
한 5분쯤 더 걷고 뛰고를 반복했을까. 뺨을 산뜻하게 스치는 아침 바람에 어색함이 사뭇 날아간 듯해 이런저런 말을 건넸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시에 학교로 다시 돌아와 일과를 시작했다. 몇 개월이 흐른 뒤, 서로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을 때에서야 그 아이가 내게 말해줬다.
"친구들 말고 어른한테 한 번도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한테도요. 선생님이 처음이었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랬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간간이 기분이 나빴지."
"그래도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아서 고마웠어요."
"그게 내 장점이지. 포커페이스 말이야. 하하."
"쌤 기분 나쁜 거는 티가 안 나지는 않았거든요!"
참 다행이었다. 만약 그 아이가 처음으로 나에게 심술을 부렸을 때, "버릇없게 무슨 말이니?"라는 식으로 대응했다면 이런 대화는 영영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면 때문에 간혹 예비교사들에게 강의를 나갈 때면 '무대응'의 유용성에 대해 설파하곤 한다.
버릇없는 언행이나 심지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만큼의 불손한 행동에도,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서 그 순간을 마치 태극권처럼 그대로 받은 뒤 차분하고 정제된 말투와 언어로 대화를 이어간다면 기도 뺏기지 않고 신뢰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