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거위벌레.송곳 같은 주둥이로 도토리에 구멍을 내고 산란한다.
이상헌
약 5일 정도 지나면 애벌레가 부화하여 도토리 속을 파먹고 한 달 정도 몸을 불린다. 종령 애벌레는 한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도토리 속을 나와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었다가 이듬해 오뉴월에 성충으로 탈바꿈한다. 무더위를 겪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도토리 흉년이 들면 암컷끼리의 경쟁이 치열하여 동족 파괴 행위를 저지른다. 다른 암놈이 파고 있는 도토리를 빼앗은 뒤 산란한 알을 제거하고 자신의 알을 깐다. 당한 암컷은 복수심에 불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나뭇가지를 끊어내어 버린다.
주둥이가 아닌 목이 길게 뻗어 나온 왕거위벌레는 참나무와 오리나무류, 자작나무 잎을 먹고 산다. 몸길이는 10mm 전후이며 다른 종과의 경쟁을 피해 도토리가 열리기 전까지 활동한다. 열매가 아닌 나뭇잎을 김밥처럼 말아서 아기 요람을 만들며 약 2시간에 걸쳐 산란하므로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다.
신중하게 고른 잎의 중간을 반으로 자르고 주맥은 남겨둔다. 절반으로 나뉜 잎끝을 두세 차례 말은 뒤 알을 낳고 다시 잎을 말아서 마무리한다. 남겨진 주맥 위쪽의 잎은 지붕 역할을 하며 영어권에서는 잎을 마는 특성에 주목하여 잎말이바구미(leaf-rolling weevil)라고 부른다.
주삿바늘 주둥이로 도토리에 구멍을 낸다
일가친척으로 비슷한 생활사를 가진 도토리밤바구미는 황토색 몸매에 갈색 무늬가 있으며, 주삿바늘처럼 생긴 주둥이가 도드라지는 녀석이다. 크기는 약 15mm 정도이며 참나무를 비롯하여 밤나무에도 꼬이는 놈으로서 삶은 밤을 먹다 보면 가끔 나오는 통통한 애벌레의 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