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민간인 강제납치 사건 피해자 김주삼씨가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의실에서 이강혁 변호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피해 사실 인정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이희훈
1956년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김씨는 황해도 용연군 용연읍 용정리 바닷가 부근에서 어머니, 동생 4명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그해 10월 10일 공군 첩보부대 출신 북파 공작원 3명에 의해 강제로 납치돼 백령도와 강화도 교동을 거쳐 서울 구로구 오류동 공군 첩보대 기지에 끌려왔다.
"그날 밤에 동생들하고 자고 있는데 집으로 들어와서 (동생들은 많이 어리니) 나를 데리고 간 거다. 남동생 하나, 여동생 셋. 정확히 몇 살인지 이제 기억이 안 나지만 동생들은 나보다 많이 어렸다."
이후 김씨는 황해도에 대한 지리 및 군부대 위치에 대한 정보를 묻는 군 당국의 신문을 약 1년 정도 받았다. 그러나 조사가 종료된 뒤에도 김씨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군 당국에 의해 억류돼 해당 부대에서 차량 수리 보조 같은 잡일을 하며 약 4년 정도 무보수 노역을 했다.
아흔이 된, 사건의 목격자이자 같은 부대에서 함께 생활한 임중철씨는 당시 북에서 잡혀 온 김씨를 아래와 같이 기억했다.
"밤중에 자다 일어나서 우연히 보면, (김주삼이) 매일 북쪽의 철망을 붙잡고 울었다. 북에서 끌려와 군번도 없이 우리 부대에서 막내 생활을 한 거다. 같은 인간인데, 부대에 다 같이 있으니 불쌍하게 생각됐다. 그래서 있는 거 없는 거 따지지 않고 도움을 줬다."
군은 더 이상 김씨로부터 나올 정보가 없게 되자 부대에서 내보냈다. 남한에 기반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김씨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경찰은 김씨에 대한 사찰과 감시를 이어갔다는 사실.
"비닐하우스에 집을 지어 살고 있었는데 경찰이 구둣발로 들어와 집을 둘러보고 가곤 했다. 그런데도 가장 어려운 것은 먹고사는 일이었다. (여기 와서) 국민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그래도 근래에는 쌀도 갖다주고 부식 거리도 갖다주더라."
진실화해위 "김주삼씨, 공군 첩보대에 의한 납치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