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입설(程門立雪). 겸제 정선(1676-1759), 18.7x14.9, 종이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입설'은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나 배움을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진경산수의 대가. 정선(鄭歚, 1676년~1759년)의 그림이다. 무릎까지 수북이 쌓이는 눈을 맞으며 스승이 명상을 거두고 비로소 눈을 돌릴 때 문안(問安)을 하는 제자의 겸양이 그림 가득하다.
노자 도덕경의 서두(序頭)가 도(道)가 비도(非道)라 하니, 무슨 연고인지 아직 생각중이지만 거문고 풍류의 세계로 돌아들면 그런 도의 경지를 수 없이 반복할 것이다. 비움과 채움의 반복, 어찌 보면 그런 돌아듬이 거문고회상이라는 현악영산회상의 세계에 들면 펼쳐진다. 이들 음악을 줄풍류라고도 하는데, 전국적으로 문화재로 지정돼 오늘날 그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영산회상(靈山會相)'. 조선이 만든 위대한 풍류 모음곡이다. 거문고 현위에서 영산회상은 조선조 내내 돌고 돌았다. 세조 때 영산회상불보살 소리가 '상령상(上靈山)'이란 거문고곡으로 시작해 이를 촉급하게 4도 올린 '중령산(中靈山)', 그리고 가락을 엮은 '세령산(細靈山)' 그리고 가락을 덜어낸 '가락더리'에 민간음악인 염불, 타령, 군악이 더해지며 영산회상이라는 거대한 풍류음악군이 만들어진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 그리고 후기로 이어지면서 영산회상의 세계가 이루어지니 그 소리에 엮어진 세월의 무게가 얼마겠는가.
시회(詩會)는 조선 선비들 풍류판 중 하나다. 자연과 물아일제(物我一體)를 이루는 풍류의 공간. 시서예악(詩書禮樂)으로 성정미학(性情美學)를 조율한다. 자연과 나, 인간과 세상에 대한 화두를 시로 풀고 거문고에 담아 노래한다. 때론 거문고에 양금이, 대금에 춤이 그리로 통음(痛飮)의 세계가 펼쳐진다. 율곡 이이는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를 통해 한미청적(閑美淸適)한 주기론적 품격(品格)을 담아 풍류를 펼쳤다.
퇴계 이황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 온유돈후(溫柔敦厚)한 품격을 담았다. 철학과 예술이 하나된 경지가 시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품격론을 통해 철학이 예술로 그리고 예술을 통한 성정(性情)을 바르게 세우고 이를 통해 사회를 교양하는 조선적 풍류세상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경향성의 차이를 본질차이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부단한 근본으로의 회귀는 그리고 변증법의 꼭지는 돌고 돌아 더 넓은 인식으로 향한다. 이이와 이황의 풍류세계는 영호남을 대별하는 풍류로 전개된다. 기호가단과 영남가단을 형성하며 성리학의 풍류미학을 토대로 각기 이상세계를 구현한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의 융성기의 모습이다.
시회는 아회(雅會), 시사(詩社) 등 다양한 모임으로 확대된다. 인왕산 자락 천수경(千壽慶, ?~1818)의 송석원(松石園)에서 있었던 시사회의 밤 모습을 그린 김홍도의 '송석원시사야연도'다. 왜란 호란이라는 가혹한 시대를 지난 조선 르네상스라고도 하는 영정조 시대. 성리학의 사림의 시회는 위항의 중인이나 서얼, 악사들이 만나는 활발한 풍류판이 열린다. 송석원에 둘러앉은 옥계시사(玉溪詩社)의 정경. 옥계시사는 주로 중인 중심의 시사였다. 보름달 아래 이들이 펼친 풍류는 아마도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