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청자 상감 운학문매병. 고려시대(12세기). 높이 42.1㎝, 입지름 6.2㎝, 밑지름 17㎝. 몸통 전면에는 구름과 학을 새겨 넣었다. 일본인 도굴꾼이 강화도에 있는 고려 무신정권의 실력자 최우의 무덤에서 도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5년 간송 전형필이 일본인 골동상 마에다 사이이치로에게 당시 기와집 20채 값으로 인수했다.
문화재청
일본 제국주의의 서슬이 퍼렇던 1935년 어느 봄날이었다. 일본 골동품계에서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며 군침을 흘리던 도자기 한 점이 거간꾼들의 손을 거쳐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늙수그레한 일본 골동상들 사이에서 서른 즈음의 앳된 조선 청년이 '구름(雲)과 학(鶴)'으로 가득한 비색의 푸른 도자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청자의 소유자는 마에다 사이이치로. 일본 골동품상이었다. 제시한 가격은 2만 원. 당시 서울에서 쓸만한 기와집 한 채 값이 천 원 가량이었으니 도자기 한 점이 기와집 20채와 맞먹는 가격이었다. 워낙 가격이 높은 탓에 총독부 박물관에서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용모가 훤칠한 미남 청년은 아무 말없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2만 원이 든 돈 가방을 내밀었다. 하마터면 일본으로 넘어갈 뻔한 고려청자의 최고 걸작,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 서울에 남게 되는 감동적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