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당일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경로를 ‘카카오맵’ 지도 위에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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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김유정, 작가 김유정
우리 일행이 출발한 사직단 위쪽, 일제강점기 시기에 이곳은 사직공원이었고, 그 윗동네에서 김유정이 누나의 집에 얹혀살았다. 김유정의 소설 <생의 반려>(1936), <따라지>(1937), <연기>(1937), <형>(1939)에 사직동 이야기가 나온다.
<따라지>에서는 첫 문장이 '쪽대문을 열어놓으니 사직공원이 환히 내려다보인다'로 시작한다. 사직공원이 보이는 언덕에 김유정이 사는 초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동네에 사는 버스걸(버스 안내원), 카페 여급, 공장 여공 등 빈민의 삶을 그리고 있다.
<생의 반려>는 김유정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당시 김유정은 몰락한 집안에서 오갈 데 없어 시집에서 쫓겨난 둘째 누나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둘째 누나는 경무과 분실 양복부의 노동자로 일하며 하루 70전 임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는데, 어린 딸과 무위도식하는 남동생까지 거둬 먹여야 하는 처지였다. 둘째 누나는 저임금을 받으며 힘겹게 살면서도 임금의 일부를 떼어 공장 사람을 상대로 돈놀이를 했는데, 돈을 벌기는커녕 본전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곤 했다.
공장에서 남자 관리자, 남자 직원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빌려준 돈을 떼이고, 궁핍에 찌들어 살다 보니 동생 유정에게 모진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누나의 날카로운 히스테리와 신경질이 폭발하면 유정은 대꾸도 못 하고 괴로워했다.
이상(李箱)의 작품 <소설 김유정>에서 김유정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말이 거의 없는 뚱한 샌님이지만, 술이 들어가면 검지손가락으로 앞머리를 후벼파며, 강원도 아리랑을 잘 부르고, 술 동무들과 싸움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안회남은 그의 소설 <김유정전>에서 "지독한 가난과 병(폐결핵, 치질)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냈고, 판소리 명창 박녹주에게 일방의 애정을 보냈으나 무시당한 연애의 상처를 지닌 채 세상을 뜬 유정은 인간으로는 비참했으나 작가 유정은 찬란하다"라고 말했다.
박태원의 소설 <거리>(1936)에서 사직공원과 사직동 장면이 나온다. 가난한 소설가 '나'는 극빈의 고통으로 자살까지 생각하지만, 자살할 용기는 없고, 멀리 떠나고 싶어도 여비가 없어 방황하다 사직동으로 향한다. 사직동에는 제법 잘 사는 벗이 있어 은근히 기대하고 찾아가지만, 사직동 집에 친구는 없었고, 낙담하여 사직공원으로 갔더니 그곳에서 물구나무 하는 벗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