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94 포스터. 향수를 많이 느끼게 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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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함에 따라 제도나 법은 새롭게 만들어지고 바뀐다. 다만 변화하는 환경이나 시대적 배경에 따라 제도, 법, 규범만 바뀌는 건 아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 또한 바뀌는 건 당연한 이치다. 지금 MZ세대들이 청년층을 이루며 중심에 있는 것처럼 그 이전에도 다양한 세대들이 주류를 이루었었다.
난 7살 국민학교 입학 덕에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1990년대 20대를 보냈던 1970년대생들은 올림픽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첫 번째 세대였다. 1970년대생들은 1970~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386세대와는 분명히 달랐다. 한창 민주화를 위해 뛰었던 그들과는 다르게 빠르고, 역동적인 시대적 변화와 문화적 다양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세기말 끝자락 세대다.
난 학창 시절 다시 교복을 입기 시작했던 첫 번째 세대였다. 학교를 졸업하고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첫 번째가 아마도 '스무살 문화'였다. 그중 가장 자주 접했던 게 음주 문화였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차태현)와 그녀(전지현)가 교복을 입고 주민등록증을 보이며 폼나게 입장하는 장면을 여러 곳에서 패러디했을 정도로 그 시절 스무살의 문화는 음주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말이 그 시절 나를 그리고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행복 언어가 되는지는 스무살을 겪는 사람만이 이해하던 유희 중 하나였다.
스무살의 의미는 자유였고, 용기였다
대학교에서는 주점 문화에 흠뻑 취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면 그 시절 한창 유행같이 번졌던 락카페와 노래방을 자주 찾았다. 특히 남중, 남고 출신인 스무살 젊은 혈기의 남자에겐 별천지와 같은 곳이 많았다. 특히나 락카페는 소개팅이나 미팅을 제외하고서 가장 확률 있을 것 같은 이성과 만남의 장이라고 많은 스무 살 남자들이 생각했을 정도다.
왕자병이나 도끼병도 아니고, 번번이 거절을 당하면서도 어디서 나온 자신감에서인지 주변 테이블의 여자들과 합석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했다. 열에 아홉은 거절을 당했지만 그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스무살의 용기를 그곳에 욱여넣었더랬다.
어렵게 용기를 쏟아내 겨우 상대방 테이블과 합석을 했지만 채 한두 시간도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자리를 파하는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절엔 12시 영업 종료가 있어서 한창 고생 뒤 낙을 찾을만하면 어떤 유행가 가사처럼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요'가 되고 만다.
실제 다음도 없는 그냥 '헤어짐'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스무 살 청춘의 열병은 좀체 식지 않았다. 그 시절엔 12시까지 열심히, 힘들게 놀아도 다음 날 오후가 되면 또 쌩쌩하게 밤을 기다리곤 했었다.
우리에겐 레몬 소주, 오이 소주가 있었다
스무 살 시절 자주 친구들과 술을 마셨던 곳은 주점이었다. 지금도 대학가나 젊은 세대들이 모이는 곳이면 눈에 띄는 주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시절엔 세 종류의 술 가게가 당시를 대표했다. 지금 내가 얘기하는 주점, 그리고 생맥주를 마시는 호프집, 마지막으로 젊은 세대가 아닌 중년들이 가는 카페가 그것이다.
그중에 주점은 지금도, 그 시절도 가장 저렴하게 취하고, 배를 채우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은 하이볼, 소맥 등 각종 폭탄주 문화가 세대를 아우리지 않고 기본적인 주류 문화로 잡았지만 그 시절엔 특별히 술을 섞어 먹는 문화가 없었다. 하지만 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참신하게도 칵테일 소주라는 게 있었다. 이름하여 오이 소주, 레몬 소주, 체리 소주 등 무엇을 섞느냐에 따라 칵테일 소주의 이름은 달라졌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홀짝홀짝 넘어가는 레몬소주 무서운 줄 모르고 몇 시간을 함께 어울리다 정작 자리를 옮길 때면 만취한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한 명씩은 나오곤 했다. 술이 그리 세지 않았던 나도 여러 차례 경험한 일이다. 목으로 넘어가는 부담감이 없다 보니 한잔 한잔 넙죽 받아먹은 게 화근이 되곤 했다.
친구 좋아하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카페 문화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주머니 가볍던 그 시절에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는 곳이 그곳 주점이었다. 우리의 이십 대 음주 트렌드는 그렇게 주점에서 시작해서 주점에서 끝났다. 지금과 같은 다양성은 없었지만 지금의 포차나 주점과는 다른 향수 짙은 분위기가 연출되는 X세대만의 문화 속 한 장소였다.
90년대 대학을 다녔던 나로서는 학생운동을 했던 세대는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선배들의 구전으로 여러 차례 과거 치열했던 운동권 생활을 들었다. 가끔은 치솟는 학비 때문에 등 떠밀려 집회에도 나가봤지만 무언가 대단한 목적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선배들 눈도장을 찍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시절 관심분야는 따로 있었다. 서태지를 좋아하고, 드라마 <질투>의 최진실에 열광하고, <별은 내 가슴에> 남자주인공인 안재욱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며 그 시대 유행을 좇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