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열린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의 회담 도중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나카 마키코의 일화가 떠오른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방한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을 휴가 때문에 만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1일부터 5일까지 휴가 중이다. 원래는 지방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으나 정권 지지율이 폭락하면서 지방행을 취소하고 서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다나카 외상의 축하 난 답례 편지쓰기와 윤 대통령의 여름 휴가. 둘 다 먼 곳에서 오는 동맹국 핵심 인사의 면담을 거부하는 이유로서 함량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로 보인다. 국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체면과 격식보다 자다가도 버선발로 뛰어나가 환대해야 하는 것이 서글프지만, '작은 나라'가 취해야 할 외교의 불가피한 모습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전임 문재인 정권이 한미동맹을 약화했다고 비난하며 동맹의 복원을 강조해온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는 것은 무슨 꿍꿍이 때문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윤 정부는 미일동맹의 강화뿐 아니라 문 정부의 대중 굴종외교를 비난하며 '친미-친일-반중 외교'를 공공연히 내세워왔다. 펠로시 의장이야말로 윤 정부의 외교노선에 딱 어울리는 '상징 인물'이며, 그를 만남으로써 자연스럽게 윤 정부의 외교노선을 중국 등 세계에 과시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가 중국과 군사분쟁을 무릅쓰며 대만 방문을 강행한 반중의 상징이라는 것을 떠나서도 펠로시 의장은 미국의 국가서열 3위이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 이은 대통령 승계 2위의 핵심 인물이다. 더구나 하원의장은 미 정부의 예산에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반도와 관련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더라도 하원이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