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거르는 모습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가양주의 대표주자 막걸리
국립민속박물관
이러한 가양주 문화가 일제 강점기 주세법이 공포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집에서 술 빚는 것이 금지되면서 자연스럽게 집에서의 술 제조 전수도 끊겼다. 밀주라는 것들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그것은 정상적인 상황에서 여유를 가지고 만드는 술이 아니었다.
단속을 필하기 위해 속성 제조법들만 넘쳐나면서 제대로 된 술빚기는 할 수 없었다. 결국 제대로 된 술 제조법의 전수도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반면 조선총독부에서는 기업화된 양조장에서 확실한 세금 징수를 위해 양조장 대상으로 효율적인 술 빚기 교육을 시작한다.
이 교육이 바로 '주조강습회'이다. 주조기술자들의 기초지식 함양과 좋은 술 제조를 위하고 제조 수득률을 높일 목적으로 조선주조협회 중앙회가 주관하고 장소와 강의는 총독부 주류시험실에서 담당하여 주조기술 강습회를 매년 실시한다.
보통 강습생 15명 내외를 모집하여 양조에 관한 학과와 실습을 3주간 내외로 실시하였으며 제1회 조선주조강습회는 1935년 5월 20일부터 6월 5일까지 17일간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내용은 이화학개요, 양조분석법, 원료 및 원료처리, 밑술, 술덧, 설비, 기계기구, 경제개요 등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주조강습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의 주조협회를 중심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각 도에서는 도 재무부 또는 주조협회 주최하에 자체 주조강습회를 열어 각 지역의 실적에 맞는 강습회를 진행한 것이다. 강습회는 탁주, 약주 강습회, 흑국소주 강습회, 누룩제조 강습회 등 다양한 명칭으로 주류 별로 실시하였으며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여 실시함으로써 교육의 효율을 높였다.
일례로 1924년 4월 19일 자 <매일신보>에는 "인천양조강습회가 대장성양조시험소 기사를 초빙하여 5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인천공회당에서 양조 강습회를 개최한다"라는 홍보기사가 나왔다. 이러한 주조강습회 내용을 신문에 게재해 많은 양조인들의 참여를 유도한 것이다. 주조강습회의 신문 홍보는 이후에도 여러 신문에서 자주 볼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