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 중 하나인 '허공에 우담바라'와 김지하 시인.전시작 중 하나인 '허공에 우담바라'와 김지하 시인.
학고재 제공
김지하는 참으로 재주가 많고 조예도 깊었다. 대학에서 전공한 미학의 영역이 넓고 경계선이 높지 않지만 그는 시ㆍ서ㆍ화에 창ㆍ연극ㆍ탈춤에 이르기까지 전문성을 넓혔다.
2001년 12월 환갑을 기념하여 김영복ㆍ현준만 등의 기획으로 서울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 <미의 여정, 김지하의 묵란전>을 열었다. 젊은 시절 원주에서 장일순에게 배운 난 치기 이래 세상의 풍상에 쫓기면서 틈틈이 그리다 말다를 거듭해온 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이 지난 시점이다.
종이를 듬뿍 사다놓고 매일 난초로 해가 뜨고 난초로 해가 지는 세월이 시작되었다. 한 해가 번쩍 지나갔다. 어느새 겨울이 되었고 마침내 묵란전을 열었다.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다. 무위당 선생 탓에 난초에 손을 댄 지 꼭 20년 만의 일이다. 누구에겐가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내 난초를 진정으로 보려면 나의 지나간 한 해를 '피드백'해야 한다. 진짜 난초는 거기 어디쯤 피었을 게다. 어느 날 어느 시 내 마음에 잠깐 들어왔다 간 어떤 생각, 어떤 느낌, 어떤 빛깔, 어떤 리듬, 바로 거기 있다."
매스컴이 모두 움직였고 전시회는 성황이었다. 매일 인터뷰하고 사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아득히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 달려와 나의 기쁨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전시 작품이 세 차례나 교체되었으니 총 80점이 나간 셈이다. (주석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