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브리나 목사당시 생활했던 고려인 집안 내부를 설명하는 사브리나 목사
임병식
사브리나 목사 또한 일생을 유랑했다.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미국으로 건너가 중장년을 보낸 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거쳐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사브리나 목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후손들에게 알려주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를 끝으로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강제 이주와 관련된 세 곳을 모두 돌아봤다. 사단법인 돌바내 회원들과 3년 전 다녀온 블라디보스토크 라즈돌노예 역은 강제 이주 열차가 출발한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은 독립운동 거점 기지였다.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을 지낸 최재형과 이상설, 안중근 의사는 이곳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안중근은 최재형의 도움을 받아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 성공했다. 신한촌에서 멀지 않은 크라스키노(延秋)에는 '동의단지동맹비(同義斷指同盟碑)'가 있다. 독립지사 12명이 1909년 2월 같은 날 약지를 자른 것을 기념한 비석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역만리 동토로 이끌고 단지를 결행하게 했는지 숙연했다. 이상설은 네델란드 만국평화회의 참석이 불발되자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와 생을 마쳤다. 마흔 여덟, 삶을 마감하면서 남긴 유언은 비장했다. 식민 지배에 있는 고국에 돌아갈 면목이 없다며 화장을 당부했다. 유해는 솔빈 강(라즈돌노예)에 뿌렸다. 강은 흘러 동해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