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교육과 부모교육은 따로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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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요. 부모가 되기 전의 나와 부모가 된 나는 분명히 다르고, 내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어요. 그게 궁금했는데 알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저는 셋째를 만나고 나서야 그 차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어느날 막내 현우가 뭔가 맘에 안 드는 지 떼를 쓰며 우는데 화가 나기는 커녕 그 모습이 귀엽게 보이는 거에요. '아이고~ 이제 자기 고집도 생겼네'하는 마음이 들면서요. '어? 이상하다.. 내가 왜 이 상황에서 이렇게 평온하지? 예전엔 안 그랬는데? ' 그렇게 아이 말고 엄마인 제 자신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져봤지요."
- 이유가 뭐였어요?
"아이들이 4~5세 무렵이 되면 자기 주도성이 생겨서 맘대로 되지 않을 때 떼를 쓰고 주장이 강해진다는 건 첫 아이 때도 알고 있있어요. 그 때 아이에게 왜 우는지, 뭘 원하는지 물어봐야 한다 등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도요. 그래서 '건우야~ 왜 울어?' 라고 다정하게 물어보려고 노력했고요. 그런데 그렇게 묻는다고 아이가 바로 울음을 멈추나요? 삼세판을 넘기지 못하고 '그만 울어. 울지 말고 말을 해야 알지!' 이런 모드로 넘어가기 쉬웠지요. 둘째 진우때는 그나마 좀 익숙해져서 한 다섯 번 정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고. 진우는 순한 아이여서 그렇게 떼를 쓰고 운 적이 별로 없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떼쓰고 우는 어린 아이'를 현우를 통해 다시 만난 거지요."
- 그런데 현우에게는 화가 안 나셨다는거잖아요?
"네… 뭐 언제나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그날 저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게 있다는 거에요. 건우, 진우에게도 '왜 울어?'라고 물었지만 저는 그때 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겠다는 마음만 앞서 있었지 아이가 왜 우는지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더라고요. 엄마니까, 아이가 울면 달래야 하고, 잘 달래지지않는다는 건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거고,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런데, 현우가 울면 진짜 왜 우는지 궁금해졌고요. 울만한 이유가 있나보다 싶기도 했어요. 물론 그 이유가 어른인 제 기준에서는 사소한 것들이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이유를 알고 나면 제 안에서 조급한 마음이나 자책감이 들지 않아요. 느긋해지고 한 발짝 떨어져서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날 아이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부모인 나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이가 울고 떼를 쓸 때 그 아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만큼, 나는 그 상황을 왜 유난히 힘들어하는지, 혹은 어떻게 잘 견디는지... 나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해요. 중요한 나머지 반쪽도 잘 챙겨보자는 마음에서 부모교육 대신 '부모학'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어요."
부모가 주인공이 되는 '부모학'
- 부모학이요?
"아동학은 아동의 특징, 발달을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아교육 및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지잖아요. 마찬가지로 부모학은 부모를 중심에 두고 부모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어떤 발달단계를 거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가는 거지요. 양육을 위한 환경적 조건으로 부모를 보는 게 아니라 성인발달과 가족발달주기 안에서 '부모'의 삶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학에서는 부모가 된다는 것을 아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한 어른으로의 성장 과정이라고 봅니다."
- 어떻게 하면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부모가 되고 내가 겉만 자란 어른이었구나 싶을 때가 있거든요.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은데, 부끄러울 때가 더 많아요.
"성인기에 접어든 나에 대해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하나 하나 실천하다보면 좋은 부모,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모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한 시대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