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 <옛날 옛적에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 표지. [그림 설명 시작] 바탕은 진한 주황색이다. 표지 하단에는 하얀색 파도가 그려져 있고, 사람의 형상을 한 까만색 캐릭터의 머리가 물 아래 잠겨 있다. 표지 상단에는 책 제목이 쓰여 있다. [그림 설명 끝]
826 New Orleans
2020년 1월, 학생들은 각자 쓴 소설을 한데 묶어
<옛날 옛적에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라는 120쪽짜리 소설집을 냈다. 826 New Orleans와 함께 출판기념회를 열기도 했는데, 가족과 지역 주민을 초대해서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기후위기에 대한 학생들의 경각심이 지역사회로 확산된 것이다. 리얼 월드 러닝에서는 이렇게 프로젝트 결과물을 교실 밖의 청중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랜 기간 열정과 고민을 쏟아 만든 작품이 실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볼 때, 학생들의 성취감과 학습 동기 또한 껑충 뛰고는 한다.
떨어지는 달걀 무사히 착륙시키는 우주선 만들기
이과 과목의 경우 세상과 연결된 프로젝트 수업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선입견을 깨는 사례도 있다. 미국 워싱턴 주 터코마 시에 있는 Science and Math Institute(SAMi)는 수학·과학을 특별히 좋아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작은 공립 고등학교다.
학교가 2.84km²에 달하는 공원(Point Defiance Park)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덕분에, 학생들은 원시림, 해변, 해양과학센터, 동물원, 실험실 등을 제2의 교실처럼 누비며 생활한다. 그러나 이런 공간적 특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의 교육 철학이다. SAMi는 '직접 해 보면서 배우기(learning by doing)'와 지역사회 자원 및 전문가와의 연결을 중시한다.
그렇다면 이 학교의 물리학 수업 시간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담당 교사인 조니 디바인(Johnny Devine)은 학생들에게 조별로 '미니 우주선'을 만드는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달걀 네 개를 우주선에 넣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을 때, 달걀이 깨지지 않는 최적의 구조를 찾으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만드는 달걀 보호장치 자체는 소박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로 고민하게 되는 것은 '우주선이 화성 표면에 착륙할 때 안에 든 내용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름도 '화성 착륙 미션(Mission to Mars)'이며, 학생들은 이 프로젝트가 현실과 이어져 있음을 알기에 실제 NASA 과학자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임한다.
이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전문가와의 연결'이다. 학생들이 조별로 '미니 우주선'을 완성하면 조니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일하는 현업 엔지니어들을 학교로 초청한다. 학생들은 이 심사위원단 앞에서 자신이 어떤 과정과 판단을 거쳐 결과물을 만들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냥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물리학적 개념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 프로젝트 수업은 지식 전달을 소홀히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교과 지식과 프로젝트는 단단하게 엮여 있어야 한다. 지식을 배우되, 프로젝트를 통해 그 지식을 현실에까지 적용해 보는 것이 리얼 월드 러닝의 핵심이다. 또한, 전문가를 만나 교류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학교에서 하는 공부가 어떤 진로나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행동해보기
마지막으로, 코로나 이후 심화된 사회 문제를 잘 포착해 수업으로 연결한 사례를 소개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건힐차터스쿨(Charter School of Morgan Hill)은 프로젝트 기반 학습(project-based learning, PBL), 지역사회와의 연결, 학생 가족의 적극적인 참여를 중시하는 학교이다.
7학년(한국 기준 중1) 학생들에게 인문학(Humanities)을 가르치는 교사 티그 투바크(Teague Tubach)는 코로나 때문에 경제가 악화되고 많은 지역 주민들이 주거불안을 겪게 된 현실에 주목했다. 그는 학생들과 상의한 끝에 '홈리스'를 해당 학기 프로젝트 주제로 정했고, 수업을 어떻게 구성할지 머리를 맞댔다.
학생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자료 조사'였다. 책과 기사,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홈리스 문제의 근본 원인을 공부했고, 노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이렇게 얻은 문제의식을 논설문과 시(詩)에 담아내기도 했다. 교사인 티그는 학생들이 똑같은 과제를 하더라도 각자 글의 주제는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이 저마다의 관심사를 탐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놓은 것이다.
이후 학생들은 심각해져 가는 홈리스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전시를 기획했다. 직접 어두운 터널을 만들고, 그 안을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채워서 관람객들이 실제처럼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다. 이 전시는 결과적으로 총 600여 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으며 홈리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바꾸고, 강력한 성찰을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