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가 지난해 4월 22일 오후 대전 중구 용두동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사 앞에서 '2021 총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일상적 구조조정 중단'과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폐기'를 촉구했다.
오마이뉴스 장재완
지난해 11월부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서울지부) 소속 13개 대학 사업장(연세대, 고려대 등) 비정규직 노조들은 16개 용역업체들과 임금·단체협약 집단교섭을 진행하였다. 현재는 각 사업장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적법하게 확보한 쟁의권을 행사 중이다. 그런데 그 노조들이 이 집단교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13개 사업장 대다수는 복수노조 체제다. 복수노조 하에서는 교섭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노동법의 절차대로 이 과정에 '무조건' 참여해야 사측과 교섭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대표교섭노조 지위를 얻어야 한다. 그 지위는 다수노조만이 '쟁취'할 수 있는데, 다른 노조보다 단 한 명의 노조원만 더 가입시키면 된다. 이 13개 사업장의 노조들도 대표교섭노조의 지위를 얻었기에 쟁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쟁의권은 교섭권이 존재할 때야 비로소 성립되는 충분조건이다.
이상한 조건
물론 사용자가 소수노조와도 교섭을 하겠다고 한다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는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그럴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법의 탄생 배경 때문이다. 사용자가 복수의 노조들과 교섭할 시 발생할 비용 상승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어떤 사용자가 소수노조와도 교섭을 하려 할까? 이 법은 2010년 첫날 새벽에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한 후 본회의에서 여당(한나라당) 의원들의 과반 투표로 가볍게 가결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기업 프렌들리'로 대표된다.
사측은 오히려 맘에 들지 않는 노조를 소수노조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다.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수익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 입장에서 이익만 된다면야, 강행할지도 모르겠다.
그 단적인 예로 연세대 청소노동자들과 같은 산별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 속해 있는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현재 소수노조화됐는데, 그 과정에서 원·하청의 불법 정황이 드러났다. 그 결과에 따라 세브란스병원 사무국장과 용역업체 부사장 등 9명이 지난해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기소는 됐지만, 사실 형이 언제 확정될지는 현재로서 기약이 없다. 실형을 받을지, 벌금형을 받을지조차 모른다. 아예 무죄가 될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서울지부 소속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은 지금 이 순간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처럼 시급 400원 인상과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기 위해 사측에 교섭을 하자고 해도, 사측은 그 요청에 응할 의무조차 없다. 같은 학교법인 내에 속해 있으면서,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연세대와 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은 교섭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갈린다.
그렇다. 연세대 학생의 고소·고발로 서울지부 소속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만, 서울지부에 그 13곳 말고도 다른 대학이나 대학병원 등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이 단지 소수노조라는 이유로, 그 쟁의 행위에 함께할 수 없는 현실적, 법적 상황에서 비롯됐을 터다. '투명인간' 취급받는 청소노동자의 현실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2017년 만해도 서울지부(당시에는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였다) 소속으로 17개 대학 사업장의 노조가 집단교섭에 참여했었다. 그 수가 현재 13개로 줄어든 건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소수노조로 전락해 교섭권을 잃은 곳도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곳의 사정은 과거, 서울지부 소속으로 집단교섭에 참여했을 때보다 확실히 열악해졌다. 이를테면 회사 측이 지정한 장소 3곳에만 노조의 현수막을 걸 수 있다는 황당한 조항이 단협에 새로 추가된 게 대표적이다. 사라진 것도 있다. 서울지부 소속 노조가 대표교섭노조였을 때는 '기본합의서'라는 사측과의 합의문서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조항이 있었다. "회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라 조합과의 자율(개별)교섭에 동의하고, 기타 교섭에 필요한 행정절차 진행에 적극 협조한다." 즉, 소수노조가 교섭을 '원한다'면, 사측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다수노조만 사측과 교섭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이 이전보다 후퇴된 상태다.
그곳의 서울지부 소속 소수노조는 현재의 단협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들이 다수노조였을 때의 단협으로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들에게 단협 교섭권이 어떤 식으로든 주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교섭권이 없으니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다수노조가 합의한 단협은 소수노조에도 적용된다. 단협 내용이 아무리 후퇴됐다고 하더라도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준용해야 한다.
교섭은 커녕 마주앉기도 힘든 노동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