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지난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로에서 집회를 열고 임금인상과 정년퇴직자 인원 충원,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는 모습.
유성호
한편에선 사측에 사회적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 이들에 힘을 보태며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하는 시민들이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들에게 '노동조합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 가맹점주·기업을 어렵게 만든다'는 프레임을 씌우곤 한다. 구조적 차별에 놓여있는 여성과 장애인의 복지향상을 위해 마련된 제도들이, 오히려 '남성과 비장애인을 역차별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앞서 나열한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인제공자로 찍힌 대상은 대부분 사회의 약자에 선 사람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이 일상에서 작은 불편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약자에게 화살을 돌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정을 내밀하게 살펴보면 '진짜 제공자'는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학교 그리고 학교의 요구사항에 맞출 수밖에 없는 청소하청업체가 있다. 그 사이에서 생겨난 피해는 청소노동자에게로 간다.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해도, 이들에게 요구사항이 있다면 파업을 하는 청소노동자를 탓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학교와 업체에게 해야 한다.
'그러려니' 무심코 지나쳤던 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리바게뜨 사안은 더 넓은 범위의 주체들이 있다. 제빵기사들과 SPC그룹 외에도 제빵기사들을 고용했던 하청업체들, 노동조합, 가맹점주, 소비자, 시민단체를 포함한 관계를 이해해야한다. 시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으로 인한 가맹점 피해는 제빵기사 때문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않고 노동 기본권을 무시했던 SPC그룹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더 복잡할뿐더러 물리적인 실체로 확인하기가 쉽지도 않아서, 주체 확인은 더 어렵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쳤던 제도와 사회관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구조적으로 쌓여있는 차별이 있다.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들을 우리는 마치 개인에게 기본적으로 부여된 권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편리는 실은 약자에게 차별과 희생을 요구해 생겨난 혜택이기도 하다. 혜택을 받아왔던 사람들이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는 걸 인지했으니 그간 당연히 보장됐어야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장을 입고 법을 발의하는 것만이 정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해도 일한만큼 벌지 못하고 밥 먹을 시간 없이 일하고, 남들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을 가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을 보고 발로 뛰고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 정치인들 입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자주 듣는다. 그 말은 틀렸다. 눈높이가 아니라 그들이 서 있는 땅을 밟고 동행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제공 한 주체가 여럿이듯 해결할 수 있는 주체 또한 여러 주체가 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이 그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자신이 정치의 주체이기도 하다. '정치인 노회찬'이 생전에 그러했듯 말이다(관련 페이지 :
노회찬 의원 추모방명록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