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가업상속공제 요건
기획재정부
'기업 봐주기' 논란...웬만한 중견기업 다 해당
기재부가 내놓은 세제개편안은 크게 '경제 활력 제고'와 '민생 안정' 등 두 축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경제 활력 제고에는 '원활한 가업승계 지원'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기업상속공제 제도 개편안은 여기 속해 있다.
가업상속공제는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해온 오너가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때 최대 500억원 한도로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다. 기업을 지원하되, 부의 대물림은 차단하겠다는 도입 취지에 따라 최초 중소기업으로 국한됐던 수혜 대상은 2011년 매출액 1500억원 이하의 중견기업으로 확대된 이래 그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다. 현재 적용 대상은 중소기업과 매출액 4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이다.
정부의 이번 세제개편안은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을 매출 1조원 미만 기업까지 그 폭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공제 한도도 두 배로 늘었다. 직전까지는 가업을 영위한 기간이 10년 이상~20년 미만일 경우 200억원, 20년 이상~30년 미만일 경우 300억원, 30년 이상일 경우 500억원을 공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공제한도가 각각 400억원, 600억원, 1000억원으로 크게 확대된다. 쉽게 말해, 매출 1조원의 중견기업 오너가 세금도 내지 않고 1000억원까지 자녀에게 손쉽게 물려줄 방법이 생긴 셈이다.
사후관리 요건도 줄어든다. 당초 가업상속공제는 '가업 유지'에 방점이 찍혀 있는 제도인 만큼, 혜택을 받은 자녀는 7여년간 표준산업분류상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개편에서 사후관리 기간이 5년으로 줄어들었다. 또 '대분류' 내에서도 업종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제조업이었던 가업을 승계 후 도소매업으로 바꿔도 문제가 없게 됐다.
오너가 사망하기 전 자녀에게 주식 등을 증여해 가업을 잇게 하는 '가업 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한도'도 확대된다. 상속공제와의 제도 정합성을 위해서다. 적용 대상 역시 기존 중소기업 및 매출 4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에서 매출 1조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이번 개정으로 매출 1조원을 넘나드는 굴지의 중견기업들까지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살펴보면, 지난해 매출을 기준으로 남양유업(9560억원)이나 교촌에프앤비(5077억원), 메가스터디(7039억원) 등 굴지의 중견기업들이 대거 수혜 대상에 오른다. 이번 제도 개편으로 손쉽게 '부의 대물림'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수저계급론, 다시 등장하나... 전문가들 "사회적 논의 필요"
한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 18일 브리핑 과정에서 관련 지적을 받고 "일본의 단카이 세대처럼, 우리 베이비붐 세대들이 지금 상당히 고령화가 돼서 기업을 상속을 해야 되는데 상속세율이 너무 높다 보니 가진 주식과 자산을 다 팔아 내야 하는 형편"이라고 제도 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출 기준선인 4000억원이 책정된 지 꽤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기업들이 많이 자랐다"며 "상속세 부담이 높아 (가업의) 연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고용도 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책 시행에 앞서 가업 승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개편안으로 한때 유행했던 '금수저'와 '흙수저' 등 수저계급론이 재조명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중소기업들은 상속세로 인해 자녀에게 사업을 물려주기 어렵다고 보고 (사업을) 처분해 아파트를 사는 일들이 있어 정부에서 가업 승계를 권했다"면서도 "그런데 매출 1조원을 달성한 기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동네 자영업자 수준이 아니다. 이번 대책으로 대기업을 제외한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들이 혜택을 받게 되는 만큼 그들에게 얼마 만큼 혜택을 줄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누구에게나 동일한 출발선이 주어져야 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이번 개편이) 금수저, 흙수저 논쟁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그렇다고 가업승계에 계속 높은 상속세를 부과하면 기업들이 (가업승계를 위해) 배임·횡령 등 또다른 범죄를 저질러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즉 '출발선'이 더 불평등해질 수 있다는 점과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사이, 어디서 접점을 찾을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