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나무 아래 돼지들커다란 도토리 나무 아래 방목되고 있는 돼지들이 지나가는 순례객들을 쳐다보고 있다. 돼지털에 윤이 난다.
송진숙
붉게 동이 떠오르는 초원에 도토리나무가 펼쳐져 있다. 그 아래 여유롭게 풀을 뜯는 돼지들이 행복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소나 양을 방목하는 장면은 종종 봤지만, 돼지를 방목하는 풍경은 처음 본다.
이게 진정한 이베리코 돼지인가 보다. 도토리를 먹고 자란 이베리코 돼지는 한국에서도 유명하여 식당에서 비싸게 파는 것을 보았다. 스페인에선 도토리가 얼마나 많기에 그 많은 돼지에게 먹일 수 있다는 거지? 진짜로 도토리를 먹이는 게 맞아? 사료에다 도토리를 조금 섞어 먹이는 정도 아냐?라며 믿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보는 이 풍경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돼지의 영양상태도 좋은 건가? 아침 햇살이 비쳐 돼지 등에 난 털들이 반짝거린다. 사랑스럽다. 좁은 축사에 갇혀 있는 한국 돼지들의 모습이 익숙했던 나로서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낯선 내가 신기했는지 돼지도 같이 나를 쳐다본다. "얘들아 안녕? 한국의 돼지에 비하면 너네는 축복이야. 이렇게 넓은 땅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풍족하게 먹고 자라니까. 그럼, 잘 있어!" 말을 건네고 발길을 돌린다.
알고 보니 도토리는 돼지가 가장 좋아하는 식품 중의 하나라고 한다. 떡갈나무나 코르크나무에서도 도토리 비슷한 열매가 열리고 도토리나무는 스페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방목된 돼지들은 도토리를 먹으면서 하루 14km 정도 돌아다니고, 그 과정에서 도토리뿐만 아니라 야생 딸기나 뿌리 버섯, 허브 식물 등의 자연 식품들도 섭취할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의 대표 식품 중 하나가 스페인산 하몽인데, 최상급에 해당하는 이베리코 베요타 등급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스페인 정부와 지자체가 내건 조건이 흑돼지의 혈통이 순수한지, 건강 상태가 좋은 지 등은 물론 마리당 3000평 이상의 방목 활동 공간과 300그루의 참나무를 확보해야 하고 도토리 외엔 다른 어떤 사료고 먹이면 안 되는 등 아주 까다롭다고 한다. 일반 돼지는 6개월만 사육하면 되지만 이베리코 베요타 등급은 18~30개월 이상 기른 돼지로 만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