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인 시인의 시집
시인의 일요일
'가자(茄子)'하면 생소하지만, '가지'하면 익숙합니다. 가지를 한자로 가자라고 부릅니다. 가자라고 하니 '어디론가 가자'라고 얘기해야 할 것처럼 느껴져서요. 가지라도 따러 텃밭에라도 가야 하겠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차를 타고 10여 분 거리에 제 텃밭이 있습니다.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땅이 좀 넓어서요, 농작물을 키우지는 않고 있습니다. 다른 분에게 농사지으라고 빌려줬습니다. 원래 텃밭이라는 것이 작아야 합니다. 텃밭이 넓으면 재미가 아니라 노동이 되죠.
뜨거운 한여름, 고추와 오이, 가지와 토마토 등을 재배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관과 마주하고 있는 한두 평 정도의 땅이 텃밭이라고요. 지극히 게으른 생각이라는 점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수십 년 몸에 밴 습관이다 보니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텃밭에서 나는 농작물을 먹는 것은 좋아합니다. 양지에 사는 아내의 친구 집에서 가끔 이런저런 채소를 얻어 오는데요, 손수 기른 작물이라서 그런지 훨씬 맛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가지를 좋아합니다.
가지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드니 나물반찬이 좋아집니다. 참 이상하죠. 평생을 먹지 않던 나물 반찬이 갑자기 좋아지다니 말이죠. 가지는 특히 물렁물렁한 식감 때문에 특히 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생김새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하지만 그 맛에 빠지니 가지 나물을 자주 찾게 됩니다.
시인은 특히 가지를 더 좋아하는 듯합니다. 1연에서 이렇게 얘기하죠. '가자(茄子), 라고 혼잣말하면 / 저녁에 찜통의 삶은 가지에서 / 당신 숨 냄새가 난다'고요. 시인의 부인인 문성해 시인이 찜통을 불 위에 올려놓으면, 시인은 무엇을 찌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뚜껑을 열어본 듯합니다. 이렇게요. '부엌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 / 다시 찜통 뚜껑을 몰래 열고 / 얼굴을 디밀어 당신 숨 냄새를 쐬는데…'
시인은 가지가 익어가는 냄새 속에서 그 누구도 아닌 '슴슴한 당신 가지 내음새'를 맡는다고 얘기합니다. 이 냄새는 어떤 냄새를 말하는 것일까요. 가지 찌는 방식이나 요리법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집에서 자주 만들던 익숙한 요리 순서에서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그 사람만의 존재를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만의 익숙한 된장 냄새와 압력밥솥의 배고픈 칙칙거림이 아내의 뒷모습을 마치 어머니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 같이.
그런데요 시인의 밥상에 오르는 저 가지나물은 어떤 맛일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문성해 시인의 솜씨는 어떠할까요. 이 시를 읽으니 저도 절로 입맛이 돕니다. 가지나물을 상에 올릴 때 꼭 한번 초대해 달라고 시인에게 청해봐야 하겠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유종인 시인은
인천에서 태어나 1996년 <문예중앙>에 시, 2003년 <동아일보>에 시조, 2011년 <조선일보>에 미술평론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 <답청>, 시집으로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등이 있다. 지훈문학상, 지리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숲 선생
유종인 (지은이),
시인의 일요일, 2022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공유하기
가지나물이 좋아졌다면 당신은 이미 어른이 된 것이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