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부자, 생각 부자 ADHD내가 만난 성인ADHD인들은 '흥미 부자'였고, 맥락을 뛰어넘어 풍부한 생각을 하는 '생각 부자'였다. 그만큼 서로 다른 분야나 소재를 연결지어 생각할 기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통섭 능력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맞는 '융합 인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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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저도 아닌 나여서 한 가지는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바라는 대로 살아서는 행복할 수 없는 재질이라는 것. 한 길을 쭉 가서 보기 좋게 성과를 쌓아올리는 직선적인 삶은 안 맞는다는 거다. 그래도, 여기저기 헛다리를 짚게 하는 자잘한 욕망 중에 독보적으로 일관된 욕망이 있긴 했다. 바로 '쓰는 데 몰입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물이 안 나오던 열 우물
내 노트북 바탕화면을 보면 2년 반 동안 찔러본 것들이 한눈에 보인다. 블로그 포스팅, 시 번역, 네이밍 공모전, 미디어 크리에이터, 전자책 편집디자인 등. 머니파이프를 여럿 꽂아 디지털 노마드가 되겠다는 포부로 글쓰기와 겸업할 일을 찾아 헤맨 흔적이다.
부업이라고 쉽게 보고 시작한 것 중에 만만한 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업은 확 타올랐다가 흐지부지됐다. 블로그 포스팅의 경우 처음에는 하루 10개씩 글을 올리다 금세 힘이 떨어져서 지금은 블로그를 사진 저장용으로 쓰고 있다. 10개월간 모은 수익은 귀엽게도 과자 한 봉지 값이다.
아쉽진 않다. '글 부스러기' 폴더는 계속 몸집을 불려오고 있으니까. 독립근로자가 된 후로 쓴 글이 담긴 폴더다. 오래 전 들은 시민기자 활동 얘기가 떠올라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낸 게 본격적인 집필노동의 시작이었다. 신용카드 이벤트에 참여하겠다고 우왕좌왕한 초보 프리랜서의 하루를 담은 글이다.
헙. 진짜 올라갔잖아! 며칠 뒤 기사가 게재됐다는 알림이 왔을 때 나는 다급히 동거인 M에게 알림을 링크했다. M은 화장실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나왔고 우리는 얼싸안고 빙글빙글 뛰었다. 첫 원고료는 1만 5천 원. 이렇게 글을 써서 생활할 수도 있겠다는 실감이 왔다.
쓰는 게 느린 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매주 연재를 하게 되면서 주말에 하던 편의점 알바도 용감하게 정리했다. 여러 모로 '여길 그만두다니 미친 게 아닐까' 싶었지만, 글쓰기를 최우선순위로 두자 처음으로 열 우물이 한 우물로 모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신명을 따라가기
헛발질이라고 생각했던 경험들이 글을 쓸 때는 하나하나 재료가 된다. 비록 글이 '산만하다'는 평도 듣고(이것은 일부분 홍시에서 홍시 맛이 나는 이치와 비슷하게 느껴져 속상하지 않았다), 아직 생활비보단 용돈에 가까운 수입이지만, 걱정되진 않는다. 필요할 땐 또 잠시 다른 우물을 같이 파면 된다.
물론 시민기자 활동도 흐지부지될 뻔한 적이 있다. 지금도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완성할 수 있을지 마음 졸인다. 그런데 이런 생활로 다가오기까지 긴 과정을 거치고 보니, 슬럼프가 오더라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떠올릴 수 있다.
'쓰고 싶다'가 모두 '쓴다'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생업과 가사 노동에 치이면 사치처럼 느껴지기 쉽고, 앉아있을 체력과 마음을 들여다볼 일말의 정신력도 있어야 한다. 재능의 한계를 확인하는 일이 두려울 수도 있다. 덜 중요한 다른 관심사에 자꾸 밀려날 수도 있다. 쓰고 싶은 마음을 쓰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축복을 충분히 누리는 게 내 목표다.
사는 게 재미없어질 때 가끔 대학 선배 O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남과 다른 방식으로 기타를 쳤다. 모임 자리에서는 으레 의기양양하게 기타를 둘러메며 순진한 후배들의 기대감을 잔뜩 높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기타의 몸통을 아무렇게나 두들기면서 제 흥에 넘쳐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이 야유하면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왜, 기타 '친' 건데!"
O는 기타를 칠 줄 몰랐다. 하지만 칠 줄 알았다. 기타를 치는 목적은 즐거움을 얻는 것이고, O는 충분한 즐거움을 얻으며 주변까지 즐겁게 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웃긴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는 본질을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뭔가를 마음껏 할 때의 신명과 환희 속에서 우리는 살아있음을 잊는다. '경험'이 목적이 될 때는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된다.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이런 사람은 외부의 보상이 필요하지 않기에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라고 했고, 이것을 '삶의 흐름에 깊숙이 빠져들 줄 안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