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이 박훈씨
박훈
-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가 바로 오늘날 '비보이 박훈쌤'으로 통하지 않나. 성공했다고 보는데 어떤가?
"어떤 걸 성공이라고 얘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좋아하는 춤을 추면서 먹고 살아가고 있으니 절반은 성공이라면 성공일까(웃음). 사실 성공이라는 의미 자체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지금까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거다.
여전히 나는 '언젠가는 잘되겠지. 반드시 좋은 날이 올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잘 되지 않더라도 '이유가 있겠지. 잘 될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빨리 털어 버리려고 애쓴다.
또 내 주위에는 과분하다고 생각할 만큼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다. 한분 한분이 내 인생 전부인 춤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해도 무방한 것 같다."
- 서산과 어떤 인연으로 내려오게 됐으며, 당시 서산을 처음 본 느낌은 어땠나?
"처음에는 런피플학원 원장님의 수업 권유로 서산을 오게 됐다. 당시 우리 학원 원장님과 서산의 J&L댄스아카데미 김아무개 대표님이 서로 친분이 있으셨다. 나는 당시 촬영을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면서 기존에 계시던 비보이 강사님이 그만두시게 됐고, 바톤을 이어 받아 내가 비보이반 지정 강사로 내려오게 됐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서산을 처음 본 느낌은 '시골 같은 고즈넉함'. 항상 서울과 천안, 평택에 있다 보니 서산은 오면 올수록 좋았다. 특히 사람이 참 정겨웠다. 만약 사람 냄새가 없었으면 내려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거다.
얼마나 좋았으면 가끔 일을 하지 않은 날, 문득 내려와 한적한 곳에서 영상작업을 하곤 한다. 숨은 매력들을 발견하면 일종의 재능기부로 홍보 촬영도 해드린다. 친구들에게 서산 소개도 하고. 그럴 때마다 참 뿌듯하다. 그 귀한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수업할 때 힘든 점이나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
"힘든 점은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버벅거릴 때, 또 준비한 내용이 갑자기 막히고 수업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을 때, 그때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힘들다.
보람을 느낄 때는 내가 없는 상황에서도 친구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내가 가르친 것보다 더 뛰어넘는 모습을 보일 때, 그때는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하며 보람을 느낀다. 여러모로 힘이 많이 드는 장르의 댄스라서 힘들다는 핑계로 연습을 피할 법도 하지만 그런데도 스스로 연습한 것을 영상에 담아 보내주기도 하는데 참 뿌듯하다. 그걸 보면 나도 더 연습하고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보람있을 때는 춤을 추면서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재미있다고 할 때다. 특히 '존경한다'라는 말을 해줄 때는 나도 모르게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 춤을 추면서 기쁜 일이나 슬픈 일, 또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면?
"춤을 추는 순간은 언제나 기쁘다. 하지만 슬픈 일도 있었다. 처음 춤에 입문하면서부터 알던 멤버 중에서 동갑내기 친구가 22살 젊은 나이에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제일 먼저 춤을 시작하고 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친구였는데, 정 많고 개구쟁이 친구였는데 군대 휴가 나왔을 때 너무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나버렸다. 가족보다도 더 많이 봤던 친구였다. 친형제 같은 친구라서 너무 슬펐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 비보이 댄서라는 직업 외에 영상제작을 시작한 이유나 배경이 있다면?
"공연을 하면 항상 영상을 찍어놓고 수집해 두는 습관이 있다. 내가 처음 올라갔던 무대 영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계속 기록해 두고 있는데 상당히 의미있다고 본다. 그러던 찰나, 춤을 추면서 광고 회사에 1년 정도 근무를 할 경험이 생겼다.
그때 내가 했던 업무는 주짓수운동 용품과 도복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관리 및 판매, 광고 업무였다. 그 외에 주짓수 대회나 상품촬영, 편집을 하기도 했다. 근무를 하다 보면 홍보촬영을 하는 날도 있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좀 더 깊이있게 공부를 하게 됐고 다양한 경험도 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