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열린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6.29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일련의 외교적 결례를 경험했다. 옌스 스톨덴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갑자기 면담을 연기하는 바람에 30분 넘게 기다리다 돌아갔고, 스페인국왕 주최 만찬장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엉뚱한 데를 쳐다보며 악수했고, 눈을 감은 윤 대통령이 나토·호주·뉴질랜드·일본 정부수반과 함께 찍힌 사진이 나토 홈페이지에 잠시 업로드됐다.
30개 회원국에 더해 한국·호주·뉴질랜드·일본 같은 협력국까지 초청된 회의였다. 의전상의 실수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동시에, 실수가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을 향한 외교 결례들 속에 '미국'이라는 공통분모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미국과 대등한 거부권을 갖지만, 나토 무대에서는 사실상 미국보다 낮다.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과 핵무기를 공유하고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나토 내의 미국'은 '유엔 안보리 내의 미국'을 초월한다.
우크라이나전쟁 1개월 전인 지난 1월 19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의회 연설에서 나토와 별개의 유럽 독자 안보체제를 강조한 것은, 유엔에서보다 나토에서 미국의 위상이 훨씬 막강한 데 대한 견제의 측면도 있었다.
나토의 의중은 상당 부분은 백악관의 의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 나토에서 윤 대통령을 향한 중대한 외교적 결례가 두 건 나왔다. 바이든이 범한 것까지 포함하면, 세 건이다. 대규모 회의이긴 하지만 손님 자격으로 참가한 한국 대통령을 더욱 예우해야 하는데도 중대한 결례가 세 건이나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들이 실소를 터트린 외교 결례
이번에 나토에서 빚어진 외교적 결례 역시 넓게 보면 국제법 연구의 한 분야다. 국제법의 형태인 법원(法源)을 논할 때 국제예양(國際禮讓, international comity)이 다뤄지고 있고, 국제예양을 위배하는 일이 벌어지면 외교 결례가 거론된다. 국가간 예법인 국제예양에는 상대방 정부수반에게 경칭을 사용해야 한다든가, 외국 군함이 입항하면 예포를 쏴야 한다든가, 국제회의에서 서열을 존중해야 한다든가 등등의 에티켓이 담겨 있다.
이 같은 국제예양은 개인 간의 예법보다 훨씬 고도로 준수될 수밖에 없지만, 이번 윤 대통령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의외로 쉽게 위반되는 경우도 있다. 개중에는 진짜 실수로 벌어지는 결례도 적지 않다.
창설 40주년 기념식 때문에 유엔이 분주했던 1985년 10월에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집트 출신의 유엔 의전국장이 의전상의 결례를 범했다. 그달 25일자 <동아일보> 4면 상단 기사는 "유엔 총회가 개막된 이래 가장 바빴던 사람 중 하나는 유엔 의전국장 알리 테이무르"였다며 "그는 케이프베르데 대통령을 시발로 각국 원수를 맞는 데 눈코 뜰 새 없었으며, 공항의 11번 게이트에서 34번 게이트까지 달리는 데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 뒤 이런 일화를 전했다.
"테이무르는 또 한꺼번에 몰려드는 각국 원수와 퍼스트레이디를 구분할 수 없어 애를 먹기도. 그는 우루과이 퍼스트레이디라고 여긴 한 부인을 유엔 건물 안으로 안내하며 스페인어로 말하자, 그 부인은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은 스페인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하더라는 것. 그때서야 테이무르는 그 부인이 이집트 퍼스트레이디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랍어로 사과했다는 것. 그 자신이 이집트인이면서도 이집트 퍼스트레이디를 알아보지 못한 경우였다."
의전 절차가 너무 분주해서가 아니라 그냥 즐거운 마음에 결례를 범한 인물도 있다. 1970년대 전반의 미국 외교뿐 아니라 세계 정치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그 장본인이다.
1923년 생인 그는 10년간 독신으로 살다가 1974년 3월 30일 마흔 살 된 샤론 매기니스와 재혼한 뒤 한동안 외교 결례를 남발했다. 그해 4월 15일자 <경향신문> '키신저 결례 밥 먹듯, 재혼 후 외교 접촉에 혼선'은 키신저 장관의 안드레이 그로미코 소련 외교부장관 영접이 국무성 출입기자들에게 실소를 안겨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2일 그로미코 외상과 국무성에서 오찬을 겸한 회담을 갖기로 되어 있던 키신저 장관은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고 1층 로비를 뚜벅뚜벅 걸어나가 현관으로 나갔으나, 그로미코 외상은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
키신저가 오찬회담 장소로 가지 않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 국무성 현관으로 나가 그로미코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기자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엉뚱한 데서 그로미코를 기다리며 순간적으로나마 그로미코의 외교 결례를 탓했을 수도 있지만, 진짜로 결례를 범한 쪽은 키신저였다.
외교 결례는 이처럼 실수로도 일어나지만, 의도되거나 기획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태 4개월 전에 있었던 1979년 한미정상회담이 그런 유형에 포함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한국 인권 상황을 비판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던 시기에 열린 이 정상회담 때는 양국 대통령이 상대방의 기를 꺾고자 의도적으로 외교 결례를 기획하는 일들이 있었다.
'기싸움'이나 다름 없었던 한미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