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이희훈
허민숙 조사관은 이 같은 인식이 사회 전체에 팽배하기 때문에 "신변보호 피해자에게 협박을 일삼은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신청을 검찰이 반려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구로구에서 발생한 신변보호 대상자 사망 사건 이야기다.
남자와 여자는 헤어진 연인 사이였다. 2월 11일 남자는 여자가 운영하는 호프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당일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2월 12일 경찰은 '스토킹·폭행 및 협박·강간·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반려했다. 풀려난 남자는 이틀 뒤인 2월 14일 다시 호프집을 찾아와 여자를 살해했다. '공권력이 위험을 인지했지만 끝내 죽임 당한 사건'에 대해 허 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스토킹이 어느 정도 강도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스토킹 및 친밀한 관계 내 범죄의 속성에 대한 이해도 자체가 낮다. 가해자의 속성도 알지 못하고 고통에 찬 피해자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영장 반려'라는 무모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거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남자가 저렇게 안 헤어지고 싶어 하는데', 이렇게 늘 가해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영장이 반려되는 거다."
두 명을 살해한 남성을 '이해한다'는 댓글, 수차례 행패를 부렸음에도 '혐의 소명이 부족하니 보완수사를 하라'며 영장을 반려한 검찰. 모두 "우리 사회가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 대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했다.
"스토킹처벌법이 계류 22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1990년대에 다 만들어졌던 법인데 버티고 버티다가 작년에야 통과·시행된 것이다. 22년이 걸린 이유, 여전히 스토킹을 구애의 한 행위라고 보는 거다. 결별 이후에 마음 정리를 하지 못한 남자가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싶은 마음에 집 앞에 찾아가는 게 범죄인가? 그런 의문들을 아직 떨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스토킹이 위험한 범죄라는 인식이 공권력 내에 정립되지 못했기에 단호한 대처가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
"피해자 스마트 워치 의미 없다, 접근금지 어긴 가해자 위치 추적해야"
허 조사관은 '단호한 대처'를 위해 친밀한 관계에서 폭력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접근금지명령을 위반할 경우 'GPS 위치 추적 감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신변보호 대상자에게 스마트 워치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것을 가해자에게도 착용하게 해 둘의 반경이 좁혀지면 알림이 가도록 하자는 거다. 둘 사이 거리가 1km 이내로 좁혀진 걸 피해자가 인지하면 하다못해 방에 들어가서 문이라도 잠글 수 있다. 가해자와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45초 만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찌르고 도망가는 판에, 스마트 워치로 신고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 스마트 워치를 지급 받는 등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 올해만 4건 발생했다.
"'피해자 신변보호 대책'하면 스마트 워치 지급이 주로 얘기되는데, 스마트 워치로 죽을 뻔 한 피해자를 지켜낸 적이 있나. 우리가 계속 접하는 건 스마트 워치를 갖고 있었지만 가족이 죽거나 본인이 살해당했다는 뉴스다. 이 정도 시점이면 스마트 워치로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를 지킬 수 없다는 걸 경찰이 인정해야 할 거 같다.
물론 효용 있는 경우도 있을 거다. 예를 들면, 나는 가해자를 봤고 가해자는 아직 나를 찾지 못했을 때다. 건물 안에서 우연히 아래층을 봤는데 가해자가 지나가고 있어서 스마트 워치로 신고했다면 가능하다. 그건 그냥 '행운'인 거다."
그저 '행운'에 맡겨놓을 수 없기에, 가해자의 팔목에 '스마트 워치'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허 조사관이 지난 1월 발표한 <가정폭력 접근금지명령 이행 강화 방안-가해자 GPS 추적제도 도입을 위한 시론>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 23개 주정부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GPS 부착 명령 관련 법률이 제정·시행 중이다. 미국에서 가정폭력 관련 법률은 법률혼뿐 아니라 교제 중인 자, 과거에 교제했던 자를 포괄하고 있어 GPS 부착 명령을 받는 제재 대상도 그 범위가 넓다. 교제폭력이나 상당수 스토킹 범죄에도 적용된다.
"미국의 특정 주에서는 접근금지 명령과 동시에 GPS를 부착하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까지 도입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다만,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사람에게는 GPS 위치 추적이 가능할 수 있다. 접근금지명령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접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때문에 접근금지명령이 얼마나 잘 준수되는가는 피해자 보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일각에서는 가해자에게 GPS 추적 장치를 착용하게 할 시 사생활 침해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허 조사관은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한다면 사생활 침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집·직장 주변에 가지 말고 피해자 근처 1km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이미 법원에서 '접근하지마' 명령을 내린 건데, 이를 어긴 사람의 위치 추적을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헌법 37조 2항에도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접근금지명령은 가해자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다. 가해자에게 '하지 마세요'하고 가해자만 바라보고 있으니 범죄가 발생한다. 접근금지명령을 내리면 뭐하나. 무시하고 와서 죽인다.
이석준·김병찬에게 접근금지명령이 내려졌었고 피해자에게는 스마트 워치도 지급됐었다. 이석준(신변 보호를 받는 여성의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 선고 받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 뭐하나, 이미 여성은 죽고 없다. 사람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는데 가해자에게 35년 징역형 선고(신변보호를 받는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살해한 김병찬이 선고 받은 형량)하는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길 바라는 건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