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
연합뉴스
'수요일 지침'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이렇듯 팽배하니, 인수위의 결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시행 취지에 걸맞도록 어떻게든 지침을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는 있었다. 사교육의 창궐을 막기 위해 당장 학교 안팎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계할 방안부터 꼼꼼하게 마련됐어야 옳다.
그간 드러난 문제점을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이야 박수받을 일이다. 다만,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는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수위는 학력 신장을 위해서 '수요일 지침'을 폐기한다고 했지만, 애초 학생들의 선택권과 학업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시행한 것이다.
'수요일 지침'은 이른바 '별 보기 운동'식의 맹목적인 학습을 통해 향상된 학력이 과연 진짜 실력이냐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또한, 학력보다 아이들의 자발성과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모든 걸 대학 진학 이후로 유예하는 우리 교육의 적폐를 해소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모름지기 교육자라면 '수요일 지침'의 실효성을 질타할 수는 있어도 결코 취지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하물며 지역사회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이라면, 올곧고 미래지향적인 교육 철학을 정책으로 구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철 지난 학력 신장 타령만 되뇌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학력 신장, 곧, 관내 고등학교의 수능 성적만 올릴 수만 있다면 괜찮다는 걸까.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을 듣노라니, 30여 년 전 비평준화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야자는 자정을 넘겨서까지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업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수요일 저녁에도 학교에서 자율학습이든 방과 후 수업이든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의견이 있어 매주 수요일 하교 시간을 학교장 재량에 맡기는 방안으로 의견이 모였다."
말뜻 그대로 해석해보자. 우선, 수요일에 일찍 하교해서 학업 리듬이 끊긴다는 걸 문제 삼았다. 그런 논리라면, 학업 리듬이 계속 이어지도록 '월화수목금금금' 공부시키는 게 맞다. 하긴 아이들 대다수가 주말을 학원과 독서실에서 보내고 있으니 리듬이 끊긴다는 건 그의 기우다.
'어떤 형태로든'이라는 조건절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반강제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까닭이다. '학교장 재량에 맡긴다'는 건, 교육청의 지침을 따르되 책임은 학교에서 지라는 뜻이다. 각 학교장의 판단 기준은 늘 인근 다른 학교장의 판단이다. 같은 목소리를 내고 함께 묻어가는 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전국 고등학교의 야자 시간이 밤 10시까지인 것도 그래서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광주광역시 관내 모든 고등학교의 '월화목금' 시스템은 5년 전 '월화수목금'으로 환원된다. 일부 학교에서 퇴행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겠지만, 학력 신장이라는 '대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교육은 사라지고 학력만 남은 씁쓸한 세태
우리 사회에서 학력 신장이라는 네 글자는 학교 교육의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하는 '도깨비방망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나온 후보들 모두 앞다퉈 '실력 광주'를 공약으로 내건 이유다. 인수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기숙사 활용도 학교장 재량이며, 학교마다 스터디 카페 형식의 자습실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기숙사는 원거리 통학 학생을 배려하기 위한 시설이라기보다 학교마다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특별반'처럼 활용돼왔다.
아울러 스터디 카페의 확충은 아이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공공기관으로서 학교 공간의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몽니 부릴 일은 분명 아니다. 다만, 학교에서의 일과가 길어지는 만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교육청은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고쳐 부르기도 했다. 학교의 역할 못지않게 가정에서의 교육도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려는 취지였다. 이 또한 허사가 됐지만, '수요일 지침'이 폐기되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다.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는 셈이다.
인수위의 마지막 일성은 교사들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학력 신장에 '올인'하겠다고 밝힌 마당이니 교사들의 역량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수능 성적 향상을 위한 수업 능력, 그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수능 성적을 올리려면 기출문제의 반복 풀이 외엔 다른 묘책은 없다.
언론에서 광주는 연임 제한으로 진보 교육감이 물러나고 다른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며 호들갑 떨었지만, 학교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교육은 사라지고 학력만 남은' 세태 속에서 진보 교육감도 무릎을 꿇었다는 좌절감이 팽배해있다.
'역사가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 반복된다'는데, 학력 신장에 '올인'하겠다는 지금은 희극의 시대일까, 비극의 시대일까.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테지만, 자꾸만 10여 년 전인 이명박 정부 때의 모습이 겹쳐진다. '퇴행' 말고 다른 단어가 당최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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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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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5시 하교 폐기'... 광주 교육계서 벌어지고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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