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4일 서울 강서구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백주림 영어회화 전문강사.
손가영
백씨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 OO초등학교와 OO중학교에서 일한 영어회화전문강사(영전강)다. 교육 현장에서 '영전강'이라 불리는 4년짜리 기간제 비정규직이다. 백씨는 오는 29일 복직을 위한 서울시교육청과의 첫 면담을 앞두고 <오마이뉴스>와 만나 "교육부와 교육청은 또 다른 대법원 판례를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시행령 통해 '4년 짜리' 비정규직 학교 강사 정당화
영전강은 겉으로 보기엔 정교사의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학교 경우, 학습 이해도 등에 따라 반을 나누는 분반 수업이 진행되면서 한 반은 정교사가, 또 다른 반은 영전강이 맡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초등학교에선 영어회화 전문 수업을 전담했다. 여기에 방학에 개최되는 영어캠프나 영어 말하기 대회 주관, 교내 영어카페 운영, 영자신문 만들기 교육 등의 업무를 더 맡았다.
기간제법상 2년 넘게 근무하면 정규직원으로 간주되는데 어떻게 4년짜리 기간제가 가능할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영전강을 임용할 경우 1년 단위로 계약하되, 계속 근무 기간은 4년을 넘지 않아야 한다'(제42조 5항)고 정하기 때문이다.
이 조항이 기간제법 예외 사유에 해당돼 영전강들은 2년 넘게 같은 일을 해도 정직원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일을 계속하려면 4년마다 재입사해야 하는 상황도 정당화됐다. 조기 영어교육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영전강을 도입할 때부터 이들을 비정규직으로 설계한 탓이다. 당시 채용된 강사는 전국에서 4731명(2010년)이었다.
영전강들은 교육청이 '고용 형태'의 근거로 삼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근본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10여년 간 주장해왔으나 교육부와 교육청은 난색을 표해왔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국정 과제로 삼았던 문재인 정부도 2017년 정규직화 예외 사유로 "다른 법령에서 기간을 정하는 등 교사·강사 중 특성상 전환이 어려운 경우"를 가이드라인에 적시했다. 이 때문에 교육청도 "교육현장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며 무기계약직 대상에서 영전강을 제외했다.
때문에 연말마다 교육청 앞에선 영전강들의 '정리 해고 반대' 시위가 벌어진다. 4년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강사가 지역마다 매년 수십에서 수백 명 단위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로 자동 전보되지 않고 서류·실기·면접 등 신규 채용 시험을 또 통과해야 했기에, 강사들은 고용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백씨는 "'우연히' 5년 동안 계속 근무했고, 한 차례 근무지 이동도 이뤄졌기 때문에" 승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들이 "계속 근로한 총 기간이 4년을 초과했고 그 사이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돼 근로관계가 단절된 특별한 사정도 없다"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근로관계 형성'은 신규 채용을 뜻했다. 백씨는 첫 4년이 지난 뒤 다시 신규 채용되긴 했으나, 학교를 옮기지 않고 같은 학교에서 1년 더 일했고 그 뒤 교육청 지휘로 다른 학교로 옮기면서 4년을 더 일했다. 신규 채용 없이 총 5년을 더 일한 셈이다. 백씨와 함께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던 유아무개 강사도 "운 좋게" 8년 동안 별도 채용 시험 없이 계속 일한 경우였다.
그러나 2017년 대법원에서 패소한 광주 강사는 달랐다. 총 5년을 일했던 이 강사는 시행령대로 근속 4년 후 신규 채용 절차를 밟았고 1년이 더 지난 무렵 계약이 해지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었다. 2심에서 승소했으나 대법원은 신규 채용을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돼 기존 근로관계가 단절된 특별한 사정'으로 보고 원심을 파기했다.
백씨는 "4년마다 계속 신규 채용(시험)을 봐서 30년, 40년을 일해도 우리는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같은 일을 계속 하는데 형식적인 채용 절차를 거쳤다는 이유로 '근로관계가 달라진다'는 게 맞냐"면서 "우리는 운 좋았지만, 법원이 영전강, 비정규직을 다루는 잘못된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줄 소송 가능성... 근본 개선책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