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타이어 서산지점 서재표 소장자살예방캠페인 기획자
최미향
- 그때는 국민 대부분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는데 소장님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온 국민의 피땀 어린 정성으로 IMF 체제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경기침체의 터널은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학업에만 묶어두지 않았죠. 고등학교에 다니며 버스비와 용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주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설렘과 씁쓸함이 교차되는 시간이었죠. 원래 손이 빨라 일을 배우는 속도가 남들보다 빨랐던 것 같습니다. 일이 손에 익으면서 재미도 붙었죠. 그렇게 제 학창시절은 가난했기 때문에 미리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경험치를 쌓아갈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르는 지금, 이제는 압니다. 그때의 경험이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인에게 인정을 받으며 어쩌면 다른 것들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더불어 얻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학업과 일을 같이 병행하며 힘들어하고 있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 넥센타이어에 입사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24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8살 5살 두 아들을 얻었습니다. 결혼 초 생활하기 위해 용역회사에서도 일해보고, 공장에서도 근무하면서 생활고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위기가 닥쳤어요. 주야근무하는 곳에서 3개 조 중 1개 조를 인원 감축한다는 내용이 전달된 거죠. 그러면서 자진 퇴사 요청해오더군요. 당시 생각이 어렸던 건지 퇴사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도 있는데 무작정 관뒀다는 것이 가장으로서 부족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위기 안엔 기회가 있다고 했던가요. 천만다행인지 당시 지금의 '넥센타이어 서산영업소'가 처음 개소하면서 물류 직원을 모집하더라고요. 제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죠. 정말 운 좋게 입사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4대보험 제외 후 약 180만 원 정도의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퇴근 후 친구와 함께 대리운전을 했고, 쪽잠을 자고 난 후 떠지지 않은 눈을 비벼가며 새벽에 일어나 다시 우유배달을 했습니다. 이 모습을 예쁘게 본 모양이에요. 어린 나이에 힘들지만 성실함과 책임감, 그럼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신 당시 넥센타이어 영업소장님께서 본사에 영업소장으로 지속해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제 삶을 반추해보면 뭐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앞말 보며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넥센을 만나 연륜 있는 분들을 접하면서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