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요리교실에서 실습 중인 학생들
전국방과후강사노조 김경희
미술실, 과학실 같은 특별교실을 쓸 수 있는 학교도 많지만 여건상 일반 교실을 같이 써야 하는 경우는 이렇게 복도에서 대기해야 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계약상 수업시간 20분 전에는 교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방과후강사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경남의 한 초등학교는 4층짜리 건물 한 동을 전부 방과후교실로 꾸며놓았다. 아이들은 아직 다른 동에서 정규수업 중이라 방과후교실은 텅 비어있었고, 친분이 있는 방과후강사들끼리 한 교실에 모여 정담을 나누며 수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과후 강사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현실
'전국에서도 손꼽힐 모범사례 아니냐'며 감탄하자 과학쌤으로 불리는 40대 여성 강사는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방과후강사들은 수입을 맞추기 위해 대체로 여러 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었다.
"수업 준비실이나 대기실이 없는 학교도 많아요. 1시간 전에 왔는데 있을 곳이 없어서 차에 있다가 30분 전에는 복도로 와서 또 기다리고. 진짜 복도의 유령이에요, 유령."
듣고 있던 다른 강사들도 수긍한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을 복도의 유령이라고 표현하는 일에 익숙한 듯 보였다. 외부인처럼 복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고, 그러다 누군가와 마주쳐 어색해질까봐 괜히 움츠러드는 기분이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게 한다고도 했다. 원래는 연구실에서 근무했지만 자녀를 키우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금이 더 좋다는 '수학쌤'은 그러나 자신이 처한 현실에 종종 자존감이 낮아짐을 느낀다고 했다.
"학교에 수업 준비실이 있더라도 공간만 있고 제대로 사무기기가 갖춰져 있는 곳은 많지가 않아요. 교무실을 드나들면서 복사기를 쓰는 것도 불편해서 자료실을 이용하려고 하면 자료실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고 제재를 당하고. 해마다 학부모, 학생들에게 만족도 평가를 받고, 공무원 채용신체검사도 받고, 절차란 절차는 다 거치고 재계약되는데, 정작 그렇게 재계약한 뒤의 처우는 너무 낮으니까..."
교원자격증을 따지도, 임용고시를 보지도 않았는데 정식 교사들과 대우가 다른 건 당연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필요에 의해 채용된 강사들이다. 관련 학과를 졸업했지만, 강사가 되기 위해 중복으로 필요한 자격증들을 따기도 하며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학교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 역시 방과후 아이들을 돌보고 지도하는 엄연한 선생님들이다.
더 큰 문제는 고용불안
추가교육과 돌봄의 기능을 동시에 하는데다 비용이 저렴해 사교육비 절감 효과도 있기 때문에 방과후학교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에 비해 방과후강사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을 늘 안고 있다. 빈 교실에서 마주한 방과후강사들 역시 고용불안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고용기간이라도 안정적으로 보장이 되면 복도의 유령 신세 같은 거야 참아볼 수 있는데, 1년마다 재계약을 하거나 공채과정을 거쳐야 되니까 늘 불안해요. 재계약 때문에 계속 을인데 이러이러한 건 좀 고쳐달라고 당차게 얘기할 수도 없죠."
김경희 전국방과후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이 이미 경험했듯 그들은 언제든지 마지막 수업 전날 불합격 통보를 받고 동료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수년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야 할 수도 있는 처지였다.
방과후강사들의 고용불안은 코로나 상황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전국방과후강사노조가 연구기관에 의뢰해 2020년 12월 제출받은 연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방과후강사들의 2019년 월 평균수입은 216만 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수업을 못하게 되면서 2020년에는 평균수입이 월 13만 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방과후강사노조 김경희 위원장은 2021년 5월 <꿈꾸는 유령 방과후강사 이야기> 책 출간 직후 한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방과후강사의 80%가 여성이며 미혼 가장이거나 이혼하거나 사별한 사람들도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책에 수록된 2020년 4월의 기자회견문에는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며 가장 역할을 하는 방과후강사가 60%를 넘는다고 되어있다.
정부에서 주는 특고-프리랜서 긴급 고용안정지원금은 사회적거리두기 내내 수입이 없었던 방과후강사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해 온 강사들의 경우,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마땅한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방과후학교를 위한 제대로 된 제도가 필요하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게 되면서 방과후교실이 일제히 재개되었고, 방과후강사들의 숨통도 다소 트이게 되었다. 부정적인 사례들만 나열됐지만 교육 현장에는 방과후강사들을 선의로 대하는 학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선의에 기댈 것이 아니라 방과후강사들이 스스로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최근 학교의 방과후학교 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하는 개정 법안이 또다시 철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업무 증가 등 교원단체들의 우려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사들을 관리하고 보호해줄 제도와 근거 조항은 반드시 필요하다.
방과후학교는 1995년에 도입된 특기적성교육 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06년부터는 방과후학교로 이름이 바뀌어 이어지고 있는데, 현재 전국 12만 명에 이르는 방과후강사는 자그마치 27년간 방치되어 온 셈이다. 위탁업체에서 방과후강사를 관리하는 방안도 시행되고 있지만, 전국방과후강사노조는 민간업체 위탁을 폐지하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