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납북귀환어부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이 불법감금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기재한 수사기록. 납북귀환어부 재심 공판 기록 중 일부.
변상철
더 이상 죄인처럼 숨어 살지 않겠다
김상명씨는 속초지원 법정에서는 다른 승운호 선원들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그는 검사와 판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무슨 죄를 씌웠는지도 잘 몰랐다. 어린 나이에 뜻 모를 법률용어를 알아듣지 못해 그냥 묻는 말엔 고분고분 '네, 네'라고만 대답했다.
그저 다시 조사받아야 된다고 끌고 갈까 봐 무섭기만 했고 죽을까 봐 두렵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가 법정에서 그토록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그를 고문했던 수사관들이 방청석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결국 속초지법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억울한 전과자가 되어 사회에 나왔지만, 끔찍한 마음이 들어 다시는 배를 타고 싶지 않았다. 김씨는 이발소에서 일을 하며 미용 기술을 착실히 배워 열아홉 살 무렵 이용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결국 스물한 살 되던 해에 스스로의 힘으로 고향 아야진 옆 마을 청간에 '청간 이발소'를 열 수 있었다.
청간 이발소는 동네 친구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고, 김씨도 그곳에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런데 친구 중 한 명이 모임의 회장이 김씨라는 이유로 방첩대에 신고하여 연행되는 일이 생겼다(그 친구 말로는 방첩대에서 시켜서 그렇게 했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고, 그 친구 역시 방첩대에 끌려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김씨의 혐의는 '북한에서 지령받은 대로 친구들을 모아 포섭해 지하당을 조직하려는 혐의'였다. 수사관들로부터 자백하라며 얼마나 군홧발로 맞았는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아니다, 억울할 뿐이다'고 항변하며 고문받는 내내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방첩대에 3~4일 정도 잡혀 있다가 나왔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감시하며 불러 조사받기도 했다.
"청간이 싫어지더라고요. 더는 거기서 못 살겠더군요. 이발소는 매형에게 맡기고 부산으로 도망치듯 내려갔어요. 그런데 부산에서 두 달 정도 있으니까 부산 정보과 형사가 찾아와 '내가 김상명이 담당이니 앞으로 어디를 가게 되면 내게 먼저 이야기하라'고 하는 거예요. '아, 이제는 도망 가봤자겠구나'생각이 들어 모든 걸 체념했어요. 결국 다시 고성으로 올라왔죠. 고문 후유증인지 고관절과 정강이가 너무 아픈 거예요. 결국 고관절을 수술하고. 5년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도 제 담당 수사관은 한 달에 한 번씩 꿔 준 돈 받으러 오듯이 계속 찾아왔어요. 내가 담당 수사관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어디를 다녀오면 금방 알고 찾아와, 왜 이야기 하지 않고 다녀왔느냐며 다그쳐요. 늘 우리 집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어요."
고성으로 돌아와 5년 동안은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만 있었다.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했기에 막노동, 이발소, 운전,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였다. 결혼할 때 아내에게 자신의 과거를 미리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혼 후 생활하는 동안 형사들이 자꾸 집으로 찾아오자, 이상하게 여긴 아내가 집요하게 이유를 물었고, 결국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취업 준비를 하는 아이들에게도 뒤늦게 납북사건을 설명하고 공무원 시험은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라고 이해시켜야 했다. 게다가 미국으로 나갈 기회가 생겼던 누나도 신원조회 문제로 여권이 나오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이 모두 자신의 과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에 항상 가족 모두에게 죄인 같다고 한다,
최근에 '동해안 납북귀환어부 피해자 진실규명 시민모임'을 알게 되고, 납북 사건 피해자들과 연락이 닿아 용기를 얻어 재심 신청을 하기로 했다. 납북귀환 피해자가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에 용기를 얻게 되었고, '전과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것을 서로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자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어쩌면 죽기 전에 억울함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진 김상명씨는 이제 더 이상 죄인처럼 숨어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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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무러쳐야 끝난 고문... 경찰조차 걱정한 불법감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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