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에서 찾은 나의 취향
최혜선
내 경우에는 화가와 그림을 줄긋기하며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던 것 같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서 이중섭, 박수근, 김기창, 천경자 화백처럼 이름은 들어본 화가도 있었지만 모르는 화가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딱히 화가들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1년 사이에 세 번을 보니 구면인 작품이 많아졌다. 같은 그림인데 달리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 컬렉션들은 계속 전시될 테고 이런 추세로 앞으로 10년을 더 이 그림들을 본다면 전세계를 누비며 사업을 하느라 바빴던 고 이건희 회장보다 내가 이 작품을 더 많이 누리게 되는 건 아닐까? 횡재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사이에 친구는 우리나라 근대 화가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 책을 읽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시대에 파리 유학? 그렇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이렇게 밝은 그림을 그렸다고? 이런 수준의 그림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던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거였을까? 화가들 개개인의 삶과 그림을 비교해보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같이 간 친구와 '내 집에 딱 하나를 건다면 어떤 그림이 좋아?'라며 준다는 사람도 없는데 이상형 월드컵 문답을 주고 받듯 서로의 그림 취향을 알아갔다.
취향이라는 건 그냥은 알기 어렵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이 진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인지 내 돈의 한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 이건희 회장이 돈의 한계를 거의 느끼지 않고 방대하게 모아온 다양한 시대, 다양한 화풍의 그림을 보면서 내 취향은 어느 쪽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쭈욱 보고나면 20분 정도가 남는데 그 시간 동안은 각자 좋아하는 그림을 한 번 더 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산수화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내가 몰랐던 내 취향 하나를 알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느 수집가의 초대'
작년에 너무 치열해서 예약을 하지 못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컬렉션이 올 3월 말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시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전시가 열리는데 1개월마다 일부 전시물이 교체된다. 5월까지는 인왕제색도가 전시되었고 6월에는 추성부도가, 7월에는 불국설경, 8월에는 화접도로 교체되는 식이다. 각 1개월 분량의 티켓을 정해진 날에 판매하는데 마지막 전시물인 화접도가 전시되는 7월 29일부터 8월 28일까지의 티켓이 6월 27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판매된다.
그렇다면 이제 6월의 전시는 볼 수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매 30분 간격의 당일 티켓을 회당 30장씩 판매하니 아침 일찍 가면 티켓을 살 수 있다. 지난 11일 토요일,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오신 엄마와 함께 보기 위해 현장 판매 티켓을 구매해 보았다. 오후 2시 티켓을 예약해 두었는데 일행이 한 명 늘어나서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오전 9시 45분에 줄을 선 지 10분 만에 10시 티켓이 매진되었다. 10시 10분이 되자 10시 반 티켓이 매진되었다. 30분가량 기다려서 티켓을 살 수 있었다. 현장에 가면 굽이굽이 이어진 줄 끝이 어디인지 지금부터 줄을 서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인원이 있으니 안내에 따르면 된다. 오후 2시에 가서 티켓을 발권할 때 보니 5시 반 티켓을 예매할 수 있었다.
이렇게 티켓을 산 시점과 입장시간이 떨어져 있을 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를 보고 근처에서 차나 식사를 하거나 박물관 경내를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다. 부산에서 오시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남은 시간에 상설전시관 2층 반가사유상이 두 점 전시된 '사유의 방'에 들렀다. 그곳부터 시작해서 개인들의 기증품을 보고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다가 관내의 카페에서 차도 한 잔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