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라너
FC뮌헨
오늘날의 독일인들이 그렇듯, 수백 년 전의 독일인들도 맥주를 사랑했다. 이들의 맥주 소비량은 가공할 수준이었는데, 식량으로 쓰일 재료마저 맥주로 만들 정도였다. 심지어 주식인 빵을 만들 때 써야 할 밀과 호밀마저 동이 날 지경이었다. 이에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는 1516년, 이른바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t)을 선포했다. '맥주를 제조할 때는 물과 맥아, 효모, 홉만을 사용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시행령이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진 않지만, 여전히 그 흔적은 남아 있다. 2016년 4월 23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독일 잉골슈타트에서 열린 '맥주 순수령' 반포 5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여전히 많은 독일 맥주들은 '맥주 순수령에 따라 양조되었다'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라벨에 적어 놓고 있다.
물론 밀맥주는 맥주 순수령을 따른 맥주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시행령으로 밀의 소비를 억제하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러기에는 밀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독일의 상류층들은 음지에서 밀맥주를 향유했다. 비텔스바흐 공작은 데켄베르크 가문에게 밀맥주를 독점적으로 양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이 권한은 다시 비텔스바흐 왕가에게 귀속되었다. 그렇게 밀맥주의 역사는 끊기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편법과 위법을 통해 맛의 전통이 계승될 수 있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라거의 유행과 함께 밀맥주의 인기가 시들해졌을 때인 1855년, 게오르그 슈나이더(Georg Schneider)가 비텔스바흐 왕가의 밀맥주 독점권을 양도받으면서 밀맥주의 부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이어진 밀맥주 전문 양조장 슈나이더, 그리고 또 다른 밀맥주 명가인 바이엔슈테판, 파울라너, 아잉거, 에딩거, 프란치스카너, 호프브로이 등 다양한 독일 브루어리들의 밀맥주들이 전 세계 애주가들을 찾아가고 있다.
밀맥주는 전통을 중시하는 스타일의 맥주지만 가끔씩 시대에 발맞춘 변화를 선보이기도 한다. 밀맥주 명가인 '슈나이더'의 브루어가 미국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IPA(인디아 페일 에일)에 큰 영감을 받았고, 두 양조장이 서로 협업해 '탭5 호펜바이세(Meine Hopfenweisse)'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밀맥주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IPA 특유의 강력한 홉 향이 모두 살아있는 독특한 맥주다. 국내에서는 맥파이 브루잉이 이 맥주에 대한 오마주 격인 '여름회동'을 만들기도 했다.
독일식 밀맥주는 해외 맥주의 다양한 스타일 중에서도 우리에게 유독 가깝고 접근성이 좋다. 특히 한 스타일의 범주 내에서도 수준급으로 손꼽히는 맥주를 편의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밀맥주를 마시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수백 년의 역사를 마시는 일이기도 하다. 이 족적을 짚어 보면서 마신다면, 더 즐거운 음용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독일에 여행할 방법을 가지고 있다. 법과 명령조차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맛을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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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과 위법으로 계승된 '너무 맛있는' 독일식 밀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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