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상임선대위원장이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균형과 민생안정을 위한 선대위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6.1 지방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5월 말, '586 용퇴론'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내 갈등이 격화했다. 박지현 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586 용퇴론'을 꺼내들자 윤호중 공동비대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김민석 선대위 공동총괄본부장이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비공개 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리면서 갈등은 잦아들었지만, 이는 이제 막 정치권에서 부상하는 청년 세대와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586 기성정치인 간의 갈등을 알리는 서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
'586 용퇴론'이라는 말만 없을 뿐 국민의힘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5선 중진의원이자 '윤핵관의 맏형'으로 불리는 정진석 의원과 이준석 대표는 연일 상호 비방을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소리' '싸가지' 등 원색적인 표현도 오갔다. 두 사람의 표면적인 갈등 원인은 혁신위 구상과 이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신구간 권력 다툼으로 읽힌다.
이젠 기회의 평등이 사라지고 있다... 586은 무엇을 했나
공교롭게도 여당과 제1야당의 수장 자리에 2030 청년이 앉았고, 선거의 승리와 패배를 떠나 586 기성정치인들과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필자는 이 싸움의 결말이 청년 세대의 승리로 정해져 있다고 본다. 시간의 순리상 586 기성정치인은 퇴장의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고, 청년들은 무대에 오를 날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퇴장의 시기를 혹은 무대에 서는 시기를 얼마나 늦추고 앞당기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나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낸 기성정치인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586 기성정치인들이 퇴장을 결심한다면 청년세대는 누구보다 뜨거운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들이 쌓은 업적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과거에 비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성정치인들이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무엇을 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2번이나 강조했다. '자유'는 우리나라 보수진영이 추구하는 가치 중에서도 핵심 가치로 일컬어진다. 하지만 보수정당 출신의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부르짖을 정도로 2022년 대한민국이 비자유주의 국가는 아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해마다 세계 민주화 지수를 발표하는데 올해 우리나라는 16위에 올랐다. 또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22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는 43위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나라의 지도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자유를 부르짖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박지현 전 위원장은 586 용퇴론에 앞서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보며 부른 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민주화 운동에 뿌리를 둔 민주당의 수장이 노래 가사를 모르자 당내 강성 지지자들은 거세게 비난했다.
2022년인 현재를 살고 있는 2030 청년들에게 자유나 민주화는 철 지난 사상과 가치다. 이것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했던 자유론이나 칼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사회주의 건설처럼 옛날 얘기라는 것이다. 2030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자유와 민주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데 자유와 민주화가 과연 귀에 들어올까.
586 기성정치인들이 과거 영광에 사로잡혀 옛날 이야기만 하는 동안 청년들의 삶은 더 피폐해져만 갔다. 대표적인 청년 문제로 꼽히던 반값 등록금 이슈가 처음 제기된 건 2011년이었다.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은 등록금에 허덕인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던 공약이었지만 매번 지키지 못한 게 부끄러웠는지 이제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헬조선과 흙수저는 청년들이 희망 없는 삶을 자조적으로 표현 단어였다. 마찬가지로 근래에 들어서는 이 단어들도 자취를 감췄지만 결코 살기 좋은 사회가 됐기 때문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청년들끼리 모여 연대라도 가능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이 3년 차로 접어들면서 그나마 있던 연대도 불가능해지면서 자연스레 사라졌다. 연대가 사라진 자리는 코로나블루(우울), 청년 고독사가 자리를 꿰찼다.
희망 없는 미래에 코인과 주식은 한 줄기의 빛으로 다가왔지만 연이은 폭락장과 루나 코인 사태가 그마저도 앗아갔다. 정치권은 루나 사태를 권도형 대표의 문제와 무분별하게 투자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만 과연 정치권은 책임이 없을까?
처음 비트코인이 세계적인 열풍을 끈 건 지난 2013년이었다. 국내에서는 2018년에 들어 비트코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길게는 약 10년에서 짧게는 5년 동안 코인 열풍이 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정치가 청년들의 개인 탓으로 돌릴 자격이 있을까? 복지시스템이 잘 갖춰진 북유럽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청년들의 과도한 주식·코인 투자는 없었다.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아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현실은 심각하다. 청소년·노인 자살률은 여전히 OECD 최상위에 자리 잡고 있고, 경제적 불평등은 심각해져 가며, 이제는 기회의 평등마저 사라지고 있다.
기성정치인들이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는 사이 청년 문제는 사라졌고,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고 사회와 단절된 청년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기성정치인들이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무엇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말해 권력을 놓기 싫은 '상왕 놀이'를 하고 있는 현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