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세웅 신부는 "5천만 민족이 깨어나서 친일잔재, 독재?유신잔재를 청산해 아름다운 민족공동체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조호진
금욕적인 단조로운 일상 - 일반인의 사제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많이 달랐다 '단조로움' 대신에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다. 천당 가기 위해 예수 믿는다는 유아기적 기복사상에 절은 교계와, 신 위에 물신(物神)이 자리잡은 사회에서 그는 남들이 마다하는, 기피하는 다양한 활동을 했다.
80세의 그를 30대의 모습 옆에 세워도 본질적인 면은 변하지 않았고 세월의 풍화작용만이 깃든 것 같다. 야만성이 짙었던 엄혹한 시대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지키며 다양한 삶을 올곧게 살아왔다.
옹근 반세기, 그가 지나온 시대는 양심적인 사제가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기는 힘겨운 격동기였다. 30대에 정의구현사제단을 조직하고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으로 역사의 무대에 섰을 때나, 50년이 되는 오늘, 여전히 생기찬 활동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세월의 강하(江河)에서 익사하거나 변신하거나 제 잇속을 찾느라 신발을 거꾸로 신은 명사가 수없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