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무동>
문화재청
화폭 안으로 들어가다
김홍도의 화폭으로 들어가 보자. 처음에는 좌고(座鼓)가 보인다. 흡사 판을 이끄는 으뜸잽이로 보인다. 지금과는 다르게 양손에 가는 채를 들고 무릎을 꿇고 판을 채근하는 듯 보인다.
옆으로 장구(杖鼓)가 보인다. 궁편은 손바닥으로 그리고 채편은 대나무로 만든 열 채로 두들기고 있다. 수염 난 얼굴에 머리를 숙이고 있어 다소 불만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옆에 향(鄕)피리 혹은 목파리를 분 사람이 보인다. 제대로 피리를 운지 하지만 약간 옆으로 삐어 물었다.
그리고 세(細)피리 혹은 곁피리를 부는 이들의 양 볼이 두툼하다. 향피리는 힘이 좋아 튀지 않게 소리를 놀리는 듯하다. 좌고를 중심으로 대금과 세피리가 화답하는 소리를 놀리며 무동의 춤과 어울리는 구도가 나온다.
옆에 해금을 보면 김홍도 특유의 해학과 비틀음과도 같은 풍자가 있다. 일단 유일하게 뒷모습만 나오는데, 영 소리가 서운한지 농협(弄絃)하는 왼쪽이 줄을 안 놀리고 아예 손등을 보이며 줄을 막고 있다. 역삼각형 구조로 해금과 장구, 향피리는 판의 흥에서 좀 비켜난 듯하다.
조선시대 최고의 흥행사 삼현육각
무동의 춤판을 대하는 삼현육각 소리에 뭔가 어깃장이 있다. 김홍도의 귀에 들린 그들의 소리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장구는 뭔가 맵시 없이 무겁고 향피리는 자꾸 소리가 새고, 기가 찰 정도로 앙증맞은 해금은 먹통 같은 소리로 갔는지 모른다.
삼현을 치는 잽이들 차림새를 보면 또 재밌다. 당시 삼현육각은 최고의 흥행사였다. 하루 종일 굿판, 궁중연희나 양반잔치, 기로연이나 회혼례, 과거급제 삼일유가 잔치, 굿중패든 산대패든 남사당패든 빠지는 곳이 없었다. 실로 조선 최고의 흥행 밴드답게 이 그림에도 잽이들의 바쁜 일상이 보인다. 소위 군영(軍營)에 속해 있는 세악수(細樂手)와 민간의 악사들이 함께 패를 이루고 있다.
보통 세악수는 전립과 다른 검기전립이라 부르는데, 주로 검무에 사용하던 모자를 썼다. 깔때기같이 뾰쪽한 모자에 금속정자를 달고 공작 깃과 상모(象帽)를 꽂으며 둘레에 성성전(猩猩氈)인 털로 짠 모직물을 두르고 청색 명주끈을 매는데, 검기건립을 쓴 세피리와 해금은 군영에 소속된 세악수이고, 장구와 향피리, 대금잽이는 민간악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좌고잽이는 검기전립을 쓰고 민간악사의 복장을 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있어 보인다. 연륜처럼 여러 판을 주무른다. 세악수 중 고참이고, 또한 동네 풍류악사들을 이끄는 인물로 보인다. 이 화판의 또 하나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리고 오늘날 보면 군영에 속해 있으므로 늦은 오후에 이루어진 놀이판이라 생각된다.
세악에는 행진 앞에 불고 치는 관악기와 타악기 위주의 취고수가 있다면, 삼현육각 구성의 세악수도 있었다. 영조 이후 각 군영에 바로 이 세악수의 배치가 본격화된다.
조선조 중앙군영으로서 훈련도감(訓練都藍)·어영청(衛營廳), 금위영(禁衛營)과 융아청(潤我廳), 수어청(守瓚廳) 등 5군영 편제에 따라 세악수 또한 군영에 편재된다. 신청이나 재인청 등 전국적인 광대 집단은 궁중의 장악원 등으로 악단이 편재됐다.
세악수는 궁중과 민간, 군영에 이르는 공간을 아우르며 수많은 음악을 창출했다. 세악(細樂)이란 말대로 풍악을 울리며 춤과 굿과 잔치와 놀이, 의례와 의식에 이르는 조선의 풍류판을 누볐다. 오늘날 장악원이 궁중의례에 따라 움직였다면 세악수는 민관(民官)을 넘는 조선 최대의 악단을 만든다. 가히 천하의 판을 움켜쥔 셈이다.
노는 폼이 남다른 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