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박정희 정권의 보건복지부 정책 사업으로 시작된 국토개척사업은 '개척단'의 이름으로 민간인을 강제 동원, 강제 결혼 시키는 등 인권유린을 통한 국가 폭력 사업이었다. 당시 간척을 통해 조성된 논과 도로.
조혜지
- 진실화해위가 서산개척단 인권유린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피해 보상 조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발표 이후 여러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보상까지) 얼마나 또 걸릴지... 선거가 끝나야 후속 조치가 있을까. 다만 지금 죽어가는 사람들, 치료비라도 할 수 있게 (보상이라도) 보태줬으면 좋겠다."
- 피해자 중 현재 투병 중인 분도 있다고 들었다.
"쬐끄만할 때, 아버지 손잡고 대전역에서 붙들려 온 사람이 있는데. 참 억울한 사람이다. (개척단에서 배급받은) 건빵을 아버지가 먹었다는 걸 알고 (개척단 간부에) 떼쓰다가, 아버지가 (단원들 앞에서) 폭행을 당해 죽었는데 자기 때문에 맞아 죽었다는 생각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폐암 판정을 받고 집에 있다. 그런 처지에 있는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
- 개척단 2세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들이 개척단 마을에서 죽어 친척도 없이 고아처럼 산 2세들이 많다."
- 처음 문제를 제기할 당시만 해도 단원 일부가 중심이었는데, 신청자들이 더 모였다.
"처음엔 개척단원 11명뿐이었다. 진실화해위 2기가 시작되고 더 찾아보니 연락들이 왔다. 광고도 많이 했고 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참... 학교 다닐 때 개척단 마을에 산다고 하면 왕따들이 되어서, (개척단 마을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뭉쳐 의리가 좋았더라. 서로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추가 피해를) 찾기도 했다."
- 고령의 피해자들이 많은 상황이다. 지난 5월 25일 진실규명 소식을 듣지 못하고 사망한 윤기숙씨도 88세로 사망했다.
"젊은 사람들은 몇 명 안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일 막내가 곧 70이다. 아까 말한 사람처럼 아픈 사람도 있고, 지금도 요양원에 있거나, 요양원에서 이미 돌아가신 분도 있고. (건빵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비석이나 하나 세워달라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명단에 올리려 하니, 호적이 없는 거다. 57년 전 (호적 등록 없이) 죽은 사람이라 그렇단다. 내가 증인이 될 수도 있는데... 전체 단원 앞에서 조회하는 동안 그렇게 됐으니 많은 사람이 봤다. 동네에선 확실히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법적으로는 어떻게 할 길이 없다는 거다."
- 2020년 5월엔 국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고 그땐 형제복지원 피해자 최승우씨에게 고마웠다. 그분이 국회 의원회관 지붕에 올라갔을 때, 그때 나도 국회에 며칠을 있었다. 그렇게 싸우고 있는데 차마 못 내려오겠더라. 통과되는 날 전화로 그 소식을 듣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너무 반가워서... 그런데 정부 배상·보상안이 빠져 있더라. 선거가 끝나야 후속 조치가 될라나... 선거가 끝나면 더 열심히 요구해볼 생각이다."
- 이 사건을 공론화하기까지 노력이 많았다.
"10년 가까이 고생했다. 단원들이 경비라도 걷어 내겠다고 했을 때도, 소 한 마리 팔면 된다고 놔두라 했다. 그렇게 10년. 몇몇 친구들은 쓸데없는 짓 한다고 야유도 했는데, 지금은 '고생하네' 하더라. 그 소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나도 보람이 있다' 했는데, (응원 소리에) 어찌나 힘이 딱 나는지."
- 가장 요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개척단원들 일부로부터 과거 토지 가분배증을 산) 2차 피해민들이 있다. 개척단원만큼 심한 인권탄압은 안 받았다 해도, (땅을 만들기 위해) 일은 비슷하게 했다. 땅으로 (피해를 나눠) 보상받자니,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도 든다. 일단 인권 피해에 대한 보상을 했으면 해줬으면 한다."
- 국가가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국가가 우리한테 보상해도 국가는 손해 보는 게 하나도 없다. 수년간 300만 평이 넘는 땅을 개간했다. 그때 정부가 삽 한 자루 대 준 일이 없다. (개간 당시에도) 미군들이 주는 구제품, 양곡들을 배급받아 먹고 살았다.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해준 게 없다. 그저 잡아다 넣고 강제로 고아 딱지를 붙여서 때리고 죽여 가며 땅을 만들었다. 하루도 멀쩡한 날 없이 인권탄압을 당하며 일해서 만든 땅이다. 그걸 홀랑 빼앗아 국가 땅이라고 했다. 그걸 이제 국가가 알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달라는 요구다."
- 5년 전 인터뷰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사과를 확실히 해야 한다. 정부가 잘못했다는 사과 한마디. 그걸 해줘야 한이 풀리지 않겠나. 19살 내 청춘 내다 버리고, 나도 이제 80이 넘었다. (내가 일군 땅에) 돈을 대가며 땅값을 치르고 있으니, 세 딸이 '아버지 땅이니 우리가 사드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돈을 주고) 샀다. 아버지 한이나 남지 말라고... 그런 심정으로 사는 동료들이 많다."
- 지역과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진실화해위 결정 이후 반응은 어땠나.
"맹정호 서산시장(6.1 지방선거 낙선, 현 당선인은 이완섭 신임 시장- 기자 말)은 축하한다고 전화 왔더라. 국회에서 과거사법 통과됐을 때도 난리가 났었는데... 축하하면 뭐 하냐고, 하나도 진전된 게 없다 싶었지만 그래도 (진실화해위 결정 등) 진전은 있었다. (변화를) 못 느끼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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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마을'의 의리, '가해자 박정희' 피해를 끌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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