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윤기숙씨의 아들 신인환씨.
조혜지
윤씨의 외아들인 신인환씨는 개척단 마을에서 첫 번째로 태어난 아기였다. "내가 돈이 없응게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해싸서 마을에 침놓는 데 갔더니, 침을 잘못 맞았다 하대유. 내가 (내 발로) 갔으니 뭐라고 할 수가 없잖아유." 윤씨는 5년 전 인터뷰에서 아들이 언어장애를 갖게 된 것도 자신의 탓이라 말했다.
신씨와 같은 개척단 2세들은 국가의 '재생마을' 낙인으로 인해 학교와 다른 마을에선 '개척단 사는 애들'로 2차 낙인, 왕따와 소외를 당해온 또 다른 피해자들이었다. 언론에선 이들을 정부의 재생 사업 성공 결과물로 홍보했다.
"새로 태어난 어린이 32명 가운데는 사내아이가 29명이나 되어 '개척촌의 물이 좋다' '앞날의 좋은 징조'라는 등 좋아서 야단들이다." - <동아일보> 1964년 6월 15일 '피땀흘려 살쪄간다 보람찬 갱생' 중
신씨는 학교를 졸업한 뒤 경기도 수원에서 공장 일을 하다 어머니가 있는 서산으로 돌아왔다. 개척단원들이 우글거리던 고향집은 창문살 하나 수리된 곳 없이 그대로였다. 인터뷰 이후 5년 만에 다시 찾은 윤 할머니의 집도 '너무 초라해서 부끄럽다'고 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지자체와 복지관 등에서 창문 수리나 낡은 전기선 정리 등의 지원들은 받았지만, 할머니가 바랐던 '제대로 된 집'은 생전에 얻지 못했다. 신씨는 "어머니가 20대에 이 마을에 오셔서 88세에 돌아가셨다. 일궈 오신 것을 (얻지 못했다는) 한이 조금이라도 인정된다면 좋겠다"고 바랐다.
가해자 대한민국
그러나 국가는 여전히 윤씨와 같은 피해자들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서산개척단 사건 공론화에 앞장서 온 정영철 진상규명위원장은 "300만 평 넘는 땅을 개간해놨지만, 정부는 삽 한 자루 대준 일이 없다"면서 "그렇게 일한 걸 홀랑 빼앗아 국가땅이라고 했고, 그걸 이제 정부가 알았다. 정부가 '잘못했다'는 사과 한 마디를 하고, 보상을 해야 10대 청춘 다 내버린 한이 풀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가 사죄하라'는 권고가 지난 5월 11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를 통해 발표됐다. 피해 발생 꼬박 60년 만이다. 윤씨 부부와 같은 피해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을 인정하고, 국가가 직접 사과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당시 국가가 단원들에게 '무상분배'를 약속했다가 이마저도 폐기한 강제노역 토지에 대한 배상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방식은 국회나 정부 입법을 통한 특별법 제정이나, 정부 차원의 보상이다.
국가기관의 약속은 망자에게 닿지 않았다.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통지문을 개척단 피해자들에게 발송하기 하루 전에, 윤씨는 서산의 한 요양원에서 88세를 일기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갇힌 공간에서 투병 중이던 윤씨는 규명 결정 소식마저도 전해 듣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보상이 나오면 집을 지을라고유. 엄청 오래됐어유. 겨울에는 춥고. 너무 옛날 집이라... 그렇게 고생했는데 제대로 된 집 하나 없는 게 한스러워유. 깨끗하게 몸 뉠 곳. 그 거유."
강제 결혼으로 만난 남편을 폭력으로 여의고 수십 명의 개척단원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밥을 해온 윤씨는 생전 지난한 세월을 살아온 집터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보상을 받으면 그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그 원은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