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은 가족들과 잘게 쪼개어 쓰는 시간이다.
goumbik, 출처 Unsplash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사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자발적인 것인데, 이 자발적이라는 것에는 사회구조적인 역할에 모범적으로 적응했기 때문인 것도 있다. 또한 생계와 집안일을 그냥 놔두고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급한 성격도 한몫 할 것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겠는가.
어쨌든 나는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으며, 혹시나 일찍 죽지 않는다고 쳐도 나이 들어서는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육아는 나이 들면 저절로 없어지는 항목이고, 그러면 집안일도 어느 정도 놓여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밥에 관한 한 죽을 때까지 놓여나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가 남편에게 우리의 노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나이 들면 실버타운 들어가자. 밥 세 끼 다 주고, 의료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남편은 슬며시 웃었다. 오랜 시간 같이 살아보니, 이쯤 되면 내가 불만이 쌓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혹시 '나이 들어서 밥은 내가 할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으나 남편 입에서 나온 것은 질문이었다.
"얼마가 필요하대?"
"보증금은 별도고, 밥 세 끼에 생활비랑 의료서비스까지 하면 대략 월 400~500만원 인 것 같아."
나는 미리 검색해 놓은 실버타운의 정보를 읊었다. 그때 남편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주변 부동산과 월세를 검색하더니 말했다.
"월 400~500만원이 필요하면, 현금 흐름이 대략 그 이상 있어야 하는 거네? 그럼 한 10년 후에는 대출받고, 건물 하나 지어서 월 500이상 나오면 되지 않을까?"
밥을 안 하려는 나의 욕망은 건물을 짓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지금 팔고 있는 제품을 더욱 잘 팔고, 사업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화를 끝내고 나니 어쩐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결국, 나의 욕망이 실현되려면 지금이라도 밥과 집안일을 안 하고 살거나, 나중에라도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살 만큼 오래 살아야 한다. 전자는 지금 불가능하고, 후자는 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하는 일이 고생이 아니라 아주 재미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 하는 것밖에는 없는 걸까? 가만히 생각하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나이 들면 뭐 하고 싶어?"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어. 당신은 뭐하고 싶어?"
"당신 글 쓰는 거 도와야지."
어떻게 돕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남편은 누군가 먼저 죽는다는 생각보다 함께 한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기왕이면 다가오지 않을 우울한 상상보다는 기대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자발적으로 밥을 열심히 했다. 가족들은 밥을 먹고, 모두 자신의 공간으로 떠났다. 나는 현실의 밥 위에 하고 싶은 걸 누리고 죽겠다는 다짐을 반찬으로 얹었다. 밥과 반찬이 오랫동안 가족뿐 아니라 내 몸도 건강하게 해주리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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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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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 없는 엄마의 삶, 나도 그러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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