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각 왜곡Young과 Bramham에 따르면, ADHD가 있는 경우 어떤 활동을 수행할 정확한 순간을 알아차리는 ‘경보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다른 생각이나 자극에 주의를 빼앗겨 미래의 할 일을 기억하기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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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을 하게 되는 데는 공범이 있는데, 모든 상황이 내 뜻대로 흘러가 주리라는 낙관주의다. 보통 성인ADHD인은 비관주의와 더 친한데 시간에 관해서만 낙관주의자가 되니 우스운 일이다. 이를테면 사람을 만나러 나왔는데 갑자기 선물을 사서 가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밀려온다. 10분이면 근처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과감히 실천한다.
막상 가보면 지하도 안에서 백화점 입구를 못 찾고, 필요한 매장이 몇 층인지 몰라 헤맨다. 엘리베이터는 내려오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칸칸마다 "죄송합니다!! 먼저 지나갈게요!!"를 외치며 내려오는 진풍경(진상)을 연출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걸 생각하면 머쓱해진다.
이 얘기에 공감한다면 적어도 한 번은 '시간 추정 연습'을 하는 게 좋다. 하나의 행동에 실제로 소요되는 시간을 세분해 적어보는 것이다. '약속에 나간다'가 행동이면 외출 준비 시간, 대중교통 대기 시간, 이동 시간으로 쪼개고, 외출 준비는 세수하기, 화장품 바르기, 밥 먹기, 옷 고르기, 짐 챙기기 등으로 나눠 각각 몇 분쯤 걸리는지 써본다. 그러면 40분으로 예상한 일에 실제로는 2시간이 필요했음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일정을 짤 때도 마찬가지다. 시간 배분은 에너지 배분이다. 능력에 계획을 맞춰야 한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속지 말고 소요시간은 예상되는 만큼의 2배로 잡는 게 좋다. 나는 하나의 글을 완성할 때 최소 2~3일의 여유를 넣고, 하루 할 일을 짤 때는 중요 일정의 앞뒤로 1~2시간을 비우려 하고 있다.
일에는 '결과를 결정하는 순간'이 있다. 요리할 때 재료를 태우지 않으려면 불을 줄여야만 하는 시점이 있고, 택시 말고 버스를 타려면 집을 나서야 하는 결정적 시점이 있다. 중간중간 내가 딴 생각에 빠져 있지 않은지, 중요 시점이 지금은 아닌지 감지하는 더듬이를 키우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연재를 시작할 때는 약 복용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그래서 더 의심스러웠다. 내가 뭔가를 꾸준히, 게다가 정기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일전에도 3회 만에 흐지부지 끝낸 기사 연재가 두 개나 있었다.
변수와 변덕이 죽 끓듯 하기도 했고, 일단 내가 세포부터 비효율적인 인간이었다. 숲의 나무를 세어야 할 때 나뭇잎의 잎맥만 보고 있거나 숲을 지나 들판으로 가버리곤 했으니. 문서를 작성할 땐 내용을 다 짜지도 않았는데 문서 스타일에 집착해 들여쓰기와 테두리와 글 자체에 공을 들이며 시간을 썼다.
하지만 성과만이 결과는 아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돌아서 갈 때는 잘못 들어선 길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기도 했다. ADHD 치료나 정보 없이 버텨온 시간도 그렇다. 항상 노력 대비 결과물은 좋지 않았지만, 헤맨 만큼 나에게 맞는 요령이 생겼다.
사는 방식에 정답이 없는데 일 하고 시간 쓰는 방식에 정답이 있을 리야. '내가 얻은 답'이 있을 뿐이다. 경험을 통해 자기에게 임상실험을 마친 요령이라면 그건 진짜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그 중요한 것을 위해 지금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의식하며 살면 자기만의 요령이 생기는 것 같다.
주의력 결핍 장애(ADD)를 가진 라이더 캐롤은 책 <불렛저널>에 이렇게 썼다.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이유를 이해하면, 어떻게 할지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왜 하는지, 경험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알기 위해 '사명선언문'을 써보길 권한다. 딱 한 문장이다.
"나는 ________ 위해[왜] __________[어떻게] _________[무엇을] 하고 싶다."
나는 이렇게 쓰겠다.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과 마음으로 연대하기 위해, 매주 내 이야기를 써서, 연재를 잘 마무리하고 싶다."
의도와 행동만 남겨두고 보니 잘 써야 한다는 부담과 회피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약 없이 사는 일상은 더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나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해나간다면 그 자체가 내 삶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태도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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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약 먹기 전, 비효율 끝판왕인 내가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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