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장발장 은행장이 26일 서울 용산구 인권연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윤석열 정권 출범에 대한 우려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민주당이 정권을 빼앗긴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성호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가야 한다."
홍세화가 올해 낸 대담집인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를 인터뷰 장소에 들고 가 사인을 받았다. 그가 적어준 문장이 가슴에 콕 박혔다. "어려운 길이므로 가야 한다." 홍세화의 삶을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난민이었다. 1979년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이었던 그는 한국에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이 터지는 것을 보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사상의 자유' 침해에 따른 난민으로 인정받아 이주노동자로 생활하며, 지금도 그를 대표하는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펴내 한국 사회에 '톨레랑스'(관용) 열풍을 일으켰다.
1999년 5월 28일, 지금으로부터 꼭 23년 전에 그는 한국 땅을 밟았다. 2002년에는 '영구 귀국'을 했다. 시대는 변해 있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였고, '민주화운동'이라는 훈장도 있었다. 경기고-서울대 출신이라는 소위 'KS마크'도 유효했다. 하지만 23년 동안 그는 울퉁불퉁한 길만 골라 다녔다. 잡지 <아웃사이더>를 창간했던 199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웃사이더'다.
동시에 그는 '자유인'으로 산다. 그래서 성역이 없다. 수많은 칼럼과 책을 집필하면서 언제나 한국 사회의 핵심적 문제를 겨눠왔다. 원외 진보정당 '진보신당'의 대표(현 노동당 고문),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람들을 돕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 외국인보호소를 방문하는 시민모임 '마중'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76살, 여전히 그는 최전선에 있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홍세화를 만났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 또렷하고 정제된 언어로 정치와 언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반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드러냈으나, 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엄밀한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홍세화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 따른 사회 공공성 악화와 이로 인한 노동자·서민의 고통을 우려했고, 민주당의 모습에는 여전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진보 세력'이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에도 그는 솔직했다. "겸손하지 못했고, 학습이 부족했다"라고 성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 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윤석열 정부, 사회공공성 침식 가장 우려되는 부분"
▲ 홍세화 “윤석열 정부, 왼손 자르고 오른손은 '검찰'로 강화” ⓒ 유성호
- 요즘엔 비교적 대외적 발언이 뜸하셨던 것 같습니다. 언론 인터뷰도 거의 안 하셨고, 열심히 하시던 트위터도 끊으셨습니다.
"특별히 인터뷰를 안 한 건 아니에요. 정리가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몇 번 '나중에 한다'고 거절하긴 했지만요. 그리고 제 문제의식은 이송희일 감독과 같이 낸 대담집(<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에서 어느 정도 피력이 됐기 때문에 제 생각을 사회에 소통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SNS 같은 경우는, 한국은 지금 '설득은 안 되고 선동은 가능한 사회'인데 그런 부분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SNS가 작동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토론이나 소통을 하기 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증폭시키고 진영논리를 강화시키면서, 공론장으로서의 의미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얼마 전에 페이스북을 다시 시작하긴 했지만 열심히 하진 않아요."
- 어느덧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우려되는 지점이 있으시다면요.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취약하게나마 일궈냈던 사회 공공성이 침식당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아서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다른 나라에서는 다 이미 버린 카드가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다시 이거를 또 붙잡을 것 같아요. 이명박 정부 때 경제 정책을 입안했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성장을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라고 하니까 답답하죠. 지금 성장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증세를 해야 하는데 증세는 안 할 거고, 결국 노동의 유연화, 구조조정 등으로 서민과 노동자들에게 칼날이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 우려가 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정부론'에 끌리거든요. 그런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의하면 국가는 오른손과 왼손이 있는데, 오른손은 국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경찰·검찰·군대·고위 공무원 이런 쪽이라면 국가의 왼손은 교육·의료·복지 이런 쪽이거든요. 지금 신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국가의 축소는 정확히 얘기해서는 국가의 왼손은 잘라내고 오른손은 강화시키는 거예요. 피에르 부르디외가 경계했던 것과 정확히 맞물려있고요. 앞으로 왼손은 잘라내고 오른손은 검찰 중심으로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 촛불 항쟁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겼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문재인 정부가 이뤄야 했던 '진전'이 거의 없다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는 실망감이 워낙 컸죠. 조국 사태를 통해서 보여준 '내로남불'은 국민의힘과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가져오게 만들기도 했고요. 또 권위주의 독재 시절의 인물이나 상황을 전제하고 그 속에서 (민주화 세력으로서의)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같아요. 하지만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정치적인 세력화를 하기에는 시기가 많이 지났잖아요. 그런 점에서 민주당은 '반대'는 무척 잘하지만 뭔가를 이루는 것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민생 문제에서는 일자리, 부동산·집, 교육 문제에서 실패했죠. 부동산은 완전히 실패. 교육은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고요. 일자리 문제에서도 최저임금 상승 등 뭔가를 많이 해보려고 했지만 역풍이 불자 바로 손을 놔버리면서 국민의힘 세력과 차별성을 두지 못했던 것이 결국 민주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게 하는 결과를 빚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문재인 정부는 분명 역대 민주당 정부 중 가장 힘 있는 정부였습니다다. 그럼에도 개혁적이지 못했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대중 정부는 김종필(자민련)과 힘을 합쳐야 했고, 노무현 정부도 정몽준 (국민통합21)과의 해프닝도 겪어야 할 만큼 독자적인 힘으로 민주정권을 세우기 어려웠던 시절을 겪어왔습니다. 정치 지형이 그만큼 쉽지 않은 탓이었죠.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독자적인 힘으로 권력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의회 권력까지 차지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계급'의 문제가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국제 정치를 분석하면서 '브라만 좌파'(지식 엘리트)와 '상인 우파'(자산 엘리트)가 교대 집권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합니다. 피케티는 현실사회주의권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로 인해 전반적인 우경화 현상이 일어난 것을 노동자 정당이 실종된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한국은 사회주의에 대한 환멸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 독재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요."
- 그렇다면 민주당이 탈바꿈해서,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의 색채를 띨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국민의힘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세력'이고, 민주당은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세력'이라고 표현해요. 저는 586이 20대 때 권위주의 독재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데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서 진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숙화된 상황에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없고, 실천도 잘 보이지 않아요.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하려는 것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것이 그나마 야당으로서 노동자·서민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비관적 전망을 갖는 이유는 그들의 계급적인 지향 역시 '프티 부르주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조국 사태 때 '안 그런 사람 어디 있냐' 식의 태도를 취한다든가, 서초동 집회에서 '우리가 조국이다'를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그래요."
"진보세력, '겸손하지 못함'과 '학습 부족'이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