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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른 중심'의 사회다. 어린이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출산률 저하는 곧잘 국가 경쟁력 저하, 연금 재원 확보 난관 등의 논리로 연결될 뿐 어린이의 긍정적인 모습을 조명하는 이야기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오히려 어린이는 쉽게 무시 대상이 되고 조롱거리가 된다. 초등교사인 나는 어린이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맥락이 눈에 자주 밟힌다. 직업병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유독 나만 예민하게 구는 것일 수도 있다.
가령 '주린이' '코린이' 같은 말이 마뜩잖다. 미숙함을 어린이라는 용어에 너무 쉽게 갖다 붙이는 것 같은 인상이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농담도 못 하냐' '한글 좀 쓰고 살자'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비하를 정당화하는 무신경함이 위험해 보인다.
나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성숙한 어른을 좋아한다. 어린이를 우습게 보는 세상이 싫어질 때면 어린이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좋은 어른이 쓴 책을 읽는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은 이 시대의 정말 좋은 어른 중 한 사람이 쓴 책이다.
얼마 전 교육감선거가 끝났다. 전국의 모든 교육감 당선인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왜 그런 어려움이 발생하는가를 이해하는데 현재로서는 교육현장의 최전선에 닿아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현장 최전선
저자인 변진경은 주간지 <시사IN> 기자다. 변진경 기자는 오래 도록 어린이 문제에 천착해 왔다. 그녀는 노 키즈존 팻말이 걸린 가게 앞을 지나칠 때나, 불법 주정차 차량에 가려 죽은 아이가 나올 때면 슬픔과 분노 그리고 허망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리고는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며, 심각한지 제대로 취재해서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기자의 글쓰기답게 문장은 매우 사실적이고, 방대한 자료가 증거로 따라 붙는다. 이 책이 멋진 건 눈물이 저절로 짜지는 온갖 기구한 사연을 담담하게 처리하고, 돈과 행정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제안하기 때문이다. 교수가 쓴 이론서에는 담기기 힘든 실무자의 땀냄새가 풀풀 풍긴다.
저출생 시대 아동 인구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어린이 집단의 목소리가 쪼그라드는 상황이다. 그 속에서 부유하고 여유로운 보호자를 두지 못한 가난하고 약한 아이들은 더욱더 목소리를 잃어갔다. 아무리 가닿으려 해도 결국 닿지 못한 사각지대들이 있다. 취재할 때마다 학교, 동사무소, 지역아동센터, 시민단체 등을 뒤졌다. 가장 어둡고 그늘진 곳에 놓인 아이들의 목소리까지 '음소거 해제'를 요청하고 싶었다. (13쪽)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은 아동학대, 아동 흙밥, 목숨 건 등굣길,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교육 공백을 다룬다. 저자는 전국을 발로 누비며 아이들을 만나 눈높이를 맞췄다. 어른 중심으로 해석되는 사건사고를 어린이의 시점에서, 어린이의 입장에서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아동학대 같은 사건이 터지면 대중은 분개한다. 하지만 그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다루는 후속보도는 드물다. 저자 변진경은 누리꾼의 감정을 건드리고 금세 사라지는 수많은 뉴스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심층취재를 하며 사건의 배경을 밝히고 뿌리를 캤다. 책에 수록된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다.
화재로 세상을 떠난 세 아이... 언론보도 너머 현실
2017년 광주광역시 두암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세 아이가 죽은 사건이 있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불이 났을 때 스물세 살 아버지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스물두 살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다. 혼자 베란다에서 구조된 엄마는 담배를 피우던 중 막내가 울어 급히 끄다가 불이 난 것 같다고 했다.
당시 댓글창은 혐오와 비난으로 들끓었다. 시간이 흘러 대중의 분노가 다른 사건으로 향할 무렵 저자는 사건 현장을 방문한다. 그리고 예전부터 세 남매의 가정이 서서히 벼랑 끝으로 다다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사건 발생 1년 전,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두 부부 대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요청했다. 사는 형편이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각종 체납 통지서를 증명 자료로 제출했지만 아이들의 외조부모가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 신청에서 최종 탈락했다. 아이 엄마는 콜센터 아르바이트와 육아를 병행하고, 아빠는 PC방과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실직하고,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면서 가정 경제가 어두워진다.
이후 다섯 식구는 긴급생계비로 버티다 부부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급기야 협의 이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갈 곳이 없었던 아이 아빠는 가족과 같이 살았다. 그러던 중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단순히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다.
사건 보도 초기부터 많은 이들이 엄마 미애(가명) 씨를 단박에 '자녀 살해 방화범'으로 의심했다. 경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특히 벼랑 끝에 선 어리고 궁핍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죽이는 끔찍한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출산, 실업, 가난, 고립, (술, 담배, 게임) 중독, 철없는 부모, 불균형한 양육 부담... 여러 자녀 학대 살해 사건에서 공통으로 목격되던 위험 요소들을 이 가정도 안고 있었다.(26쪽)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이 어린이 관련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은 입체적이다. 사람들이 씩씩거리며 반응할만한 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픈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를 직면한다. 문장을 읽다보면 불편하기도 하다(건강한 의미에서). 어린이의 안전과 안녕을 위해 별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민식이법은 '모두'를 위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