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앞에서 본 아미타여래 삼존석굴. 내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아미타부처 왼쪽은 대세지보살. 오른쪽은 관세음보살이다. 관세음보살 뒤 광배의 일부는 당삼채 양식으로 조각되었다.
최서우
정면으로 봤을 때 아미타부처 왼편에 있는 이는 대세지보살상, 오른편에 있는 이가 관세음보살상이다. 특히 관세음보살상의 연꽃무늬 광배가 상당히 인상 깊은데, 일부가 당나라의 삼채 양식으로 이뤄져 있다.
아미타불의 턱과 관세음보살의 광배는 이곳이 신라의 통일이전과 당풍의 양식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삼국통일 이후까지 제작된 석굴임을 증명한다. 또한 최초 조성연대가 경주 석굴암보다 약 100여 년 빠르다는 것을 말한다.
좁은 공간에서 불상의 무게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어찌보면 군위 삼존석불이 있었기에 경주의 석굴암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 석굴암 제작자 김대성이 군위 석굴도 참조했을지 궁금해진다.
한밤마을 돌담길
아미타부처를 뵙고 북동쪽에 있는 한밤마을로 향했다. 사실 이곳에 온 이유는 삼존석불에 이어 보물 제988호 군위 대율리 석조여래입상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보호수로 보이는 아름드리나무가 하나 보이는데, 이 마을에도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아름드리나무 뒤쪽으로는 묘비와 또다른 소나무들로 가득한데, 임진왜란 시절 영천성을 수복하는데 선봉장이 된 송강 홍천뢰 장군과 군량조달과 작전을 수행한 조카 혼암 홍경승 선생의 공적을 기린 곳이다. 실제 이 묘비 앞마당은 의병을 조직하여 주민들을 훈련했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