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 덕질의 흔적인 김훈 머그와 투썸 플레이스 머그
이준수
또 언젠가는 카페 투썸플레이스 케이크에 꽂혀서 매일 케이크를 먹으러 다녔다. 한 달만에 살이 2킬로그램이나 오르는 걸 실시간으로 감지하면서도 끊을 수가 없었다. 당시 나는 어떤 것에 중독된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굿즈 수집은 중독 행위의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이번에도 결국 투썸플레이스 머그를 굿즈로 획득했다. 나에게 굿즈란 '나는 이것을 좋아합니다'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증거에 가까웠다. 굿즈라는 증거가 없으면 좋아하는 마음이 진심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달콤한 음식이 으레 그렇듯 케이크 취미는 금세 사라졌다. 투썸 플레이스 방문 횟수는 뜸해졌지만 굿즈는 여전히 탐났다. 손에 착 감기는 시즌 텀블러를 쥐고 있으면 없던 디저트 욕구도 스멀스멀 차올랐다. 내가 굿즈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복도식 구형 26평형 임대아파트에 살았었다. 베란다가 넓게 빠지고, 복도도 큼지막해서 전용 실내 면적이 좁은 집이었다. 거실에 붙어 있는 부엌은 몹시 아담하였다. 우리는 별도의 수납장을 구입하지 않고 빌트인으로 설치된 상부 찬장을 사용했다.
부부 두 사람 짐만 있으면 기본 찬장으로도 충분히 수납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도시락통, 식판 놓을 자리가 부족해졌다. 그릇 겹쳐 쌓아 두기 기술로도 한계에 이른 날, 물건 추려내기를 했다. 집안의 모든 수납장 문을 열고 모든 내용물을 꺼냈다.
마법의 주머니처럼 계속 물건이 나왔다.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여유분으로 사둔 플라스틱 약병 50개, 샐러드 가게 개업 선물로 받은 투명 물병, 결명자차 끓이는 용도로 두 번 쓴 주전자가 튀어나왔다.
상태가 심각한 곳은 책상과 서가였다. 우리 부부는 책과 문구류, 음료(차, 커피, 술)를 좋아한다. 그런 성향 탓에 '화석이 되어가는 굿즈 쓰레기'도 대량 보유하고 있었다. 일상적 필기가 불가능한 목공용 연필, 노트 굿즈가 예뻐서 구입한 조니 워커 레드 라벨, 알라딘 서점에서 포인트로 구매한 도라에몽 컵... 끝을 나열할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굿즈가 발굴되었다.
김훈 굿즈 머그컵도 이날 발견했다. 모두 1년 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이 우리 집에 잊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그러나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작업은 지난했다.
"이 예쁜 에코백은 동아서점에서 <당신에게 말을 건다> 사고서 받은 거잖아. 절대 버릴 수 없어."
인연과 사연이 묻은 굿즈는 차마 처분하기 어려웠다. 굿즈를 없애버리면 추억까지 사라져 버릴까 봐 겁이 났다. 그렇지만 그 감정 때문에 들여다보지도 않을 거면서 공간만 잡아먹는 굿즈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다. 굿즈에게 미안하지만, 어쩌면 굿즈는 예쁘고 귀여운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랑하는 굿즈만 남기고 나머지는 기억 속에 소중하게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부부는 하나 버릴 때마다 스무 번씩 들었다 놨다 번민하면서 어렵사리 쓰레기 종량제 봉투 20리터를 채웠다. 청소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잠시 멈춰서면 환경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