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개인이 스스로 왜곡된 생각을 인지하고 변화시키며 새로운 행동유형을 개발하도록 하는 치료다. 사고와 행동의 상호작용과 그 작용들이 감정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한다. 성인ADHD는 약물치료로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실행 기능 부족, 동기 결핍 등의 문제가 오래 지속된다. 일생동안 겪어온 좌절의 결과로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점, 비ADHD인들보다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점 등을 생각할 때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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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기 내내 상담선생님은 진심 어린 눈으로 내 얘기를 경청하셨는데, 여기서도 병 정체성을 속 시원히 인정받진 못했다. 상담 중 ADHD 확진을 받고 소식을 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생각이 많다고 하셨고, 병명에 얽매일까 경계하셨다. 하지만 그저 '생각 많고 예민해서 힘든 사람'으로 치부되며 살아온 나는 한 번이라도 진한 인정과 이해를 받고 싶었다. 병과 함께 살아오며 생긴 내 마음의 구조를 이해받으려면 병을 뚜렷이 인지하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성인ADHD가 있는 경우 상담에 불만을 느끼기 쉽다고 한다. "ADHD를 임상적으로 유효한 질환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거나, 이 질환과 환자의 특별한 요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전문가를 만났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Young&Bramham,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ADHD 인지행동치료> 참고).
이런 경험은 교육‧사회‧보건의료 서비스에서 되풀이되고, 그동안 쌓인 불만족에 대한 보상심리가 새로운 치료자에게 투영되기 쉽다. 상황 판단이 더디고 정서적 압박에 취약한 경우,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지 못해 치료의 방향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도 불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성장통을 견디는 일
그럼에도 나는 힘든 시기를 지나는 지인들에게 상담을 권한다. 상담은 내게 이해받지 못하는 서러움도 안겨줬지만, 타인의 이해에 의지하지 않고 바로 서는 방법도 가르쳐줬다. 두 번째 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저는 정말 이해받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내가 나를 이해해 주는 게 첫 번째예요. 이해에 신경 쓰는 마음 밑바닥에 뭐가 있는지 살펴보세요. 혹시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이 있는지."
내 경험과 판단을 부정당할 때 느끼는 섭섭함과 화 속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 '인정'과 '소속'의 욕구가 있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남의 반응에 신경 쓰는 마음이 조금 작아졌다. 내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구분하는 연습은 바꿀 수 없는 일에 기대를 내려놓게 해줬다. 상담에서 실패한 부분과 잘된 부분이 만나 욕구를 어느 정도 자급자족하는 능력을 만들어준 셈이다.
심리상담은 척추 교정과 비슷했다. 예전부터 허리가 안 좋아 이런저런 노력을 했지만 갈수록 불편이 커졌다. 그러다 어느 교정원에 다니면서 알게 됐다. 나아지려고 해온 자세와 운동이 내 몸에 필요한 것과 정반대였던 걸.
걷는 법, 앉는 법, 서는 법, 눕는 법을 하나하나 다시 배웠다. 여러 번 설명을 들으며 내 척추와 골반 모양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몸을 이해하니 어떤 자세를 취하고 피할지, 어떤 운동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 혼자서도 판단할 수 있게 됐다.
정신 차려 보니 마음의 척추가 심하게 휘어 있었다. 도움이 안 되는 방식으로 나와 사람들을 보며 살다가 중심이 틀어졌고, 틀어진 중심은 사소한 일도 버겁게 만들었다.
인지행동치료를 하며 생각하는 습관을 하나씩 살피고 다른 관점을 대입해 봤다. 내 마음의 모양을 머릿속에 스캔하고 사용법을 배우니 내면과 세상을 보는 시선에 조금씩 균형이 잡혔다. 상담은 무엇보다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한 것이었고, 마음의 열쇠를 사용해야 하는 건 남이 아닌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