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진 작가는 해외 입양에 대한 문제와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남녀의 전통적 성 역할을 전제로 한 가사 공간에서 혼란스럽다. 느리고 절묘하게 움직이는 인물은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 이분법적 젠더 구분에 불안과 권태감을 느낀다. 인물을 훔쳐보는 (관람객의) 관음증적 시점은 은밀한 쾌감과 동시에 불편한 심정마저 느껴진다.
이런 심리는 사회가 부여하는 통념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 간극을 확인한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작품이 내포하는 '고립'은 더욱 극도로 치닫는다. 신체적, 물질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제약을 받으며, 심지어 자신의 신체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앞선 영상 '슬로우 댄스'(2013)뿐 아니라 작가의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난 작품들이 여럿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남녀 양성을 지닌 인물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모티브로 제작한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폭로'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와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 여장남자· 남장여자를 총칭하는 말)의 모습이 떠오른다. 화려한 라인석을 붙인 조각품 '순종적인 스파르타 전사의 흉갑'은 남성과 여성의 몸을 하나로 표현함으로써 화자의 의지를 가늠하게 된다.
해외 입양의 현실을 알립니다, 이제는 멈춰주세요
'산신 기관'은 2017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국제 입양과 관련한 연구 자료, 실제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의 인터뷰, 드로잉과 텍스트 등으로 구성된 대형 설치 작업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입양 부모와 정부 입장에서 다뤄왔던 국제 입양 문제를 작가는 입양 자녀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나아가 국제 입양의 이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서구와 비서구 간의 제국주의적 맥락을 드러냈다. 작가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 이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을 상징하는 해와 달을 천체 모형으로 본떠서 공간 설치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입양아 출신인 작가는 국제 입양의 어두운 면(제국주의적 관습)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두 작품을 전시한다. 자기 뜻과 무관하게 아이를 해외로 보내야 했던 한국과 방글라데시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산신(山神) 기관'을 통해 "왜 입양 국가는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 모국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막지 못했는가?"라고 되묻는다.
이 작품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태양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를 달로 형상화해 이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이 작동함을 보여준다.
소수자로서 살아온 트라우마를 치유하다
조각과 영상 작품을 통해 가부장적인 시선과 타자화하는 폭력성을 퀴어적 몸짓으로 표현한 곽영준(38)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작업에서 나타나는 신체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서 정의될 수 없으며, 각 개인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자 개인의 정체성과 외부 통념이 충돌하는 정치적 공간이라 설명한다. 다중적이고 혼성적인 정체성을 담은 신체는 이성애적 관점을 넘어 퀴어와 트랜스젠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또한 다른 인종간의 국제 입양 이면에 있는 제국주의 관습을 드러내고 이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장세진(45)은 한국계 네덜란드인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켜야 했던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해외 입양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준다.
전시 제목(All about love)은 작년에 타계한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인 벨 훅스(1952~2021)가 1999년에 출판한 동명의 책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성애에 한정된 사랑이 아니라 일상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닌 사랑을 강조해온 훅스의 가르침을 따라 과거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삶을 변화로 이끄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은 명확하다. 젠더와 성 역할, 인종에 대한 이분법적 정의, 서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기록 방식, 가부장적 권위 등을 해체하는 것이다. 전시는 개인과 사회에서 발생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을 예술적 실천으로 보여준다고 믿는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열리는 두 개의 전시지만, 한목소리를 내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한 방향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층적인 시각에서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