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18 42주년 당일, 오후 자습시간을 빌려 '5.18 고사'를 치렀다. 예상 밖으로 점수가 낮았지만, 나름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서부원
그런데,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쓴 지난 두 해 동안 사실상 손발이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비대면 원격수업조차 버거웠던 터라 음악회 등의 추모 행사는커녕 교실에서의 계기 수업조차 여의치 않았다. 그저 조회나 종례 때 5.18 몇 주년임을 알려주는 게 고작이었다.
올해 전면 등교가 허용되면서 발길이 분주해졌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감소 추세라고는 해도 여전히 확진자가 이어지는 데다, 밀집이 불가피한 학교 특성상 긴장의 끈을 놓긴 힘들다. 지금도 학교에선 운동장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코로나로 무기한 연기됐던 5.18 행사를 다시 시작하려니 제약이 한둘 아니다. 당장 행사를 함께 꾸려본 아이들이 이미 졸업하고 없다. 대개 학교 행사는 준비 과정에서부터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게 보통인데, 지금 대입을 앞둔 고3 아이들조차 아무런 경험이 없다.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해온 행사라도 몇 해 미룬 뒤 재개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물며 경험한 이가 아무도 없다면 차라리 새판을 짜는 편이 낫다. 코로나로 인한 공백은 예산 편성에도 영향을 끼쳤다. 적어도 올해 5.18 행사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예정에 없던 일이다.
덩달아 5.18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도 예년 같지 않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5월이 시작되면 교내 분향소가 설치되고 갖가지 추모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가 나붙었는데, 올해는 학교 안팎의 분위기가 이상하리만큼 썰렁하다.
역사 교사로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
5월을 이대로 흘려보내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만 한다. 본디 시간은 망각의 편이어서, 이대로라면 43주년인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썰렁해질 게 분명하다. 하릴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5.18의 정신은 몰각된 채 한낱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수험용 지식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사 교사로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밀려왔다. 코로나를 핑계로 헛되이 보낸 지난 두 해의 5.18을 똑같이 반복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 섰다. 학생회의 도움도, 예산도, 준비할 시간도 없었지만,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는 배짱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 나섰다.
그렇듯 번갯불에 콩 볶듯 계획된 것이 '버스킹'과 '5.18 시험'이다. 학사일정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5월 18일 당일 점심시간에 급식소 앞에서 간이 공연을 열고, 자습 시간을 빌려 지필고사 형식으로 5.18 관련 내용을 공부해보자는 취지다.
버스킹은 일단 뜻 맞는 동료 교사와 의기투합했다. 함께할 아이들을 모집하고 행사 계획을 짤 여유가 없어서다. 따로 연습할 시간이 마땅치 않아 몇 해 전 행사 때 무대에 올렸던 노래를 다시 부르기로 했다. 어차피 '청중'이 달라진 만큼 옛것과 새것의 차이가 느껴질 리 없다.
총 네 곡에 공연 시간은 고작 20분이다. 무대도, 객석도 따로 없다. 노래하는 이도, 듣는 이도 서서 부르고 들어야 한다. 급식을 위해 줄을 서고 식사 후에 교실로 가는 도중의 잠깐이지만, 노래를 함께 부르고 들으면서 5.18 42주년임을 떠올리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겼다.
첫 곡은 '그날이 오면'. 영화 < 1987 >의 OST로 사용되면서 요즘 아이들에게도 잘 알려진 노래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5.18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줄 수 있다. 알다시피, 80년대 민주화운동은 '5.18 광주 알리기'였다.
다음은 고1 한 아이의 솔로 무대다. 친구들 사이에서 '피아노 신동'으로 불리는 그가 악보도 없이 프랑스의 샹송 가수 미셸 뽈라네프의 'Qui A Tue Grand'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을 연주했다. 이 노래는 1980년대를 풍미한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의 원곡으로 유명하다.
세 번째는 5.18 추모 주간이면 항상 겹쳐 생각나는 사람을 위한 헌사다. 5월 23일 세상을 떠난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그를 위해 만들어진 곡은 아니지만, 누구든 이 노래만 들으면 그가 떠오른다고 했다.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 몇 해 전 추모 행사의 주제곡이기도 했다.
늘 그래왔듯, 마지막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목놓아 부르는 것이다. 5.18 희생자 추모를 넘어, 명실공히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다. 나아가 일본과 대만, 동남아 등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을 만큼 세계인의 공감과 호응을 얻고 있다.
별도의 계기 수업 대신 준비한 '5.18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