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들의 등교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전문가들은 각 시기에 필요한 발달 과정을 놓치면 아이의 인격 형성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고 말한다. 인격 형성은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여성가족부의 초등 발달 특성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기에 친구 관계의 중요도가 증가하고 자아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시기 정부 차원의 지원은 학습결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김씨는 "사회화 교육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도가 따로 없어 학교 자율로 뉴스포츠나 컵케이크 만들기 활동을 기획해 접촉 기회를 늘렸다"고 말했다. 이미 고학년이 된 아이들의 보충 수업은 그마저도 국어와 수학 위주로 돌아간다.
우리보다 앞서 본격적인 대면 수업을 시작한 영국의 경우 이미 2020년부터 소규모 그룹 수업인 '버블'을 통해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병행했다. 영국의 일부 학교는 교사를 대상으로 정서 건강 지도 교육을 확대하고, 상담 교사 수를 늘려 대면 수업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면 수업과 적절한 보완책이 함께할 때 더 빠른 교육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다.
앞서 인터뷰에 응한 초등학교 관계자들은 제때 발달하지 못한 아이들의 사회성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대안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초등교사 김씨는 거리 좁히기의 일환으로 짝 활동과 개인 상담 횟수를 늘렸다. 아이들은 짝꿍과 작품을 만들고 수업을 들으며 친구가 됐다.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위한 발표 수업도 계획했다. 수업에 참여한 아이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한다. 김씨는 "자유롭게 모둠 활동을 할 수 있으니 더욱 다양한 사회성 수업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나노 교실 : 파편화된 중고등 교실
경기도 성남시의 한 중학교 2학년 지석이(가명)는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보여준 뒤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다. 마스크 쓴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고백했는데, 나중에 본 맨얼굴이 기대한 모습과 다르단 이유였다. 코로나 시기 얼굴을 절반이나 가린 채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로 교제하는 일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수업 시간도 사뭇 달라졌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 현지(가명)는 대면 수업이 낯설다.
"코로나 이후에 줌 수업하면서 선생님께 질문하지 않고 제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대면 수업에서도 그러게 돼요. 선생님이 앞에서 수업하셔도 줌 수업을 틀어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온라인 수업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늘면서 교실도 인터넷 강의처럼 한방향 의사소통이 주를 이뤘다. 다시 시작한 조별 수업도 막막하다. 이 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박아무개 교사는 "요즘 애들은 바로 앞에 친구를 두고도 카카오톡으로 대화한다"며 바뀐 교실 풍경을 설명했다.
교육 공백 2년을 거치며 아이들의 파편화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지난 5월 한국교총이 교원 79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19로 공교육이 봉착한 가장 심각한 문제'란 물음에 교사들은 '사회성 저하(35.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는 2위 '교육 격차 심화(27.7%)'보다 7.4%p 높은 수치다.
명맥만 겨우 유지되는 학생자치활동
"회장, 부회장이 할 일은 거의 없어요. 단체 메신저를 통해 선생님 얘기 전달하는 정도지."
서울의 한 고등학교 담임 박아무개씨는 코로나19 이후 학급 회장단의 역할이 눈에 띄게 축소됐다고 말한다. 학급에서 대화 자체가 줄어드니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선생님께 전달하는 일도 줄었다. 학급 회장단이 맡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학급 회의 진행이다. 교사 박씨는 코로나19 이후에는 단 한 번도 학급 회의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3년 전엔 한 달에 한 번 정도 학급 회의를 했어요. 지금은 일절 안 해요. 학급 회의 내용이 주로 학교생활에 관한 거잖아요. 학교에서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고 온라인으로 대체되다 보니 회의할 주제도 거의 없죠."
학급 회장, 학생회, 대의원회와 같은 '학생자치활동'은 학생 스스로 정치적 자신감을 기르고 사회 참여 의식을 갖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코로나19 교육 공백 이후 자치활동들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교사뿐 아니라 학생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성남시 한 공립 중학교에 다니는 서아무개 양은 "학생회 지도 선생님이 전에 활동한 자료를 가지고 계시는데, 비대면 때 거의 활동 못하던 시기에 그걸 주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근 가셨어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아무 자료 없이 다시 대면 활동을 시작하려니 막막해요"라고 말했다. 올해 자치활동을 하려는 아이들은 백지상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학교는 감염병 관리, 학습결손 보충에만 신경을 쏟느라 학생자치활동과 같이 제도화되지 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위드 코로나' 시기 학생자치활동은 오프라인으로의 회귀가 아닌, 온오프라인의 조화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앞서 인터뷰한 교사 박씨는 "제가 맡은 토론 수업을 좀 더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게더타운이나 로블록스에서 수업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학생자치활동도 꼭 학교랑 교실에서만 이뤄지란 법은 없다"라며 메타버스를 활용해 자치활동을 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게더타운과 로블록스는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가상 공간에서 아바타가 직접 움직이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한다. 대의원 회의, 모의 법정, 학급 회의 등 학생자치활동에서도 충분히 활용해볼 길이 있는 것이다. 교사 박씨는 또 "이제 학급 단위 자치활동만 고집할 게 아니라, 진로나 적성과 연계한 자치활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거리 좁히기가 시급한 대학생 네트워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