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시인의 시집
창비
지구 반대편의 땅들, 불모지가 아닙니다. 그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 문화는 다르지만, 모두 뜨거운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입니다. 동물의 권리까지 주장하는 오늘,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아픔과 아우성을 외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겠습니까.
화자는 말합니다. '매끄러운 길인데 / 핸들이 덜컹할 때가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 눈물로 제 발등을 찍을 때다'라고요. 화자의 진술처럼 저는 누군가의 눈물이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내 삶의 작동방식 속에도 '상호작용' 하고 있다고.
너무 억지 주장입니까. 단순히 시적인 '감정의 발화'로 이 문장을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제가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까닭, 저 원망과 아픔의 마음이 다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우리가 저 마음을 부정한다는 것은, 숫자와 데이터로만 세계를 보려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인간은 영혼이 없는 유기체일 뿐이고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과 인간, 크게 다를 것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영혼이 없는 유기체인 인간에게 종교란 망상일 뿐일 테죠. 우리가 근거하고 있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립니다.
인간이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까닭,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자를 위하고 그들의 삶까지도 지지해주려고 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을 화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촛불이 깜박, / 까만 심지를 보여주었다가 / 다시 살아날 때가 있다. / 순간, 아득히 먼 곳에 / 불씨를 건네주고 온 거다'라고요.
저 불씨는 나로부터 지구 반대편까지 건너갔다가, 내가 언젠가 불씨를 잃어버렸을 때 건네주려고 올 것입니다. 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간의 역사는 지속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
이정록 시인은...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를 쓰며, 충청도 사투리를 가장 맛깔스럽게 시로 표현하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시집으로 『의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등이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럴 때가 있다
이정록 (지은이),
창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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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기'보다 '시 읽기'와, '시 소개'를 더 좋아하는 시인. 2000년 9월 8일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그 힘으로 2009년 시인시각(시)과 2019년 불교문예(문학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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